한국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내 열심을 낸다고 구원받는가?
한국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기독교의 유입단계에서는 많은 사람이 희생(천주교 박해) 당한 안타까움이 있었으나 교리적으로는 그리 큰 문제점은 없었다. 하지만 기독교인 들은 일제 치하에서 씻을 수 없는 패악을 저질렀다. 그들은 머리를 조아려 신사참배를 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어야 했느냐에 관하여는 이견이 분분하다. 문제는 침략자에게 빌붙는 정도를 넘어서 적극 협력까지 한 일이다.
당시 신앙의 일 세대로써 믿음이 굳건하지 못하여 그랬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나, 일제와 야합한 무리들이 회개와 치리(治理) 없이 한국기독교 교단의 어른으로 그냥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썩은 뿌리가 아직도 교단에 건재하며 호령까지 하고 있다.
썩은 뿌리에서 온전한 열매가 열리지 못하듯이 그런 나무는 진즉에 도끼에 찍혀 불속에 던져 질 일이데 그렇지 되지 않고 오히려 겉으로 무성하게 자랐다. 이는 지도자라는 썩은 뿌리가 자란 게 아니라, 연약한 믿음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다수의 열정이 이루어 낸 결과다.
친일파와 그의 자손들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주류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일제가 지배기간 동안 자신들의 세력을 광범위하게 심어 놓아서 그렇다. 정계, 관료, 학계, 교육계, 예술계, 종교계, 법조계, 재계, 경찰, 군대까지 한국사회의 전반에 걸쳐서 장악하였다.
교회는 그중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교회는 다른 집단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사람의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곳이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온전하지 못한 자들이 지도자로 서 있으면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다. 이들 때문에 한국 교회가 어떻게 왜곡되었고, 그 양상과 결과가 어떠한가를 살펴본다.
내 열심을 낸다고 구원받는가?
금식이나 기도원에서 작정기도를 하거나, 헌금을 많이 내고,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면 믿음이 충만해지고 구원과 복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성경을 몇 번 통독하면 믿음을 얻는다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한다. 복음의 진리는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군대에서나 통하는 선착순이다.
이를 하지 않은 것 보다는 좀 낫지 않느냐고 반문을 하게 되는데, 먼저 물어 볼 것은 그 열심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초신자 시절이나, 어느 날 갑자기 영빨(?)을 받은 경우 한동안 자기 열심을 미친 듯이 내기도 한다. 그러다 한계가 오면 지치게 마련이다. 이때 믿음도 잠시 쉬었다 간다고 뒤로 물러서서 자기 위안을 삼는다. 믿음이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 아니다.
장로교의 집사나 장로라는 자들이 최고의 신앙 선배라고 불리 우는 존 칼빈의 ‘무조건 선택’ 교리를 안다면 그따위 짓을 하지 말라고 말릴 일이다.
믿음이 각자의 열심으로 이룬다고 가르치거나, 비슷한 뉴앙스를 풍기면 교인을 교회의 노예로 만들려는 수작이다. 그런 곳은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아니다.
기득권자들은 아래 사람에게 늘 열심을 내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자신들의 권위도 서고, 유지가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