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가 주장한 사항들이 상당히 많았던데다가 직권(職權)으로 검토해야 하는 법리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원고가 청구취지에서 1996. 3. 1. 재임용거부결정의 무효확인을 구하고 있었는데, 3. 1.은 삼일절이라 공휴일이어서 학교측에서 그 날 결정을 하였을 것 같지도 않고, 원고가 그 날 통지를 받았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기록을 샅샅이 살펴보니 증거상으로는 2. 29. 재임용거부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변론재개 이후 추가로 제출된 증거에 의하면 재임용거부결정은 실제로 3. 4.에 있었습니다). ‘원고는 1996. 3. 1.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증거들을 종합하면 1996. 2. 29.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원고 주장의 위 일시에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더 나아가 살펴 볼 필요없이 이유 없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사건이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다툼 없는 사실로 정리함으로써 원고에게 생기는 불이익을 막아주셨습니다.‘ 라고 생색을 내고 있습니다. 아니면 날짜가 다르다고 ’이유 없음‘으로 기각 판정을 내리겠다는 뜻입니까? 충분히 그럴 상황이라고 합니다.
돈을 빌려 준 사람이 2월28일에 빌려 주었는데, 3월 1일에 빌려 주었다고 주장하면 돈을 받아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대한민국의 법 논리인가요?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사건이 고법 판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입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인 김교수가 재판기일을 연기 했을 리는 만무하고 피고측인 성균관 대학과 재단인 삼성측이 김교수에게 엿 먹어 보리는 심정으로 최대한 재판일정을 끌었을 것입니다. 그분이야 말로 잃어버린 10년 세월이었습니다.
2006. 12. 22. 마지막 변론기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원고의 교육자적 자질에 관한 입증을 위해 피고가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이 진행되었습니다. 증인들은 원고에게 불리한 취지로 증언을 하였고, 박 부장님께서는 원고에 대하여 반대신문을 할 것을 고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원고는 반대신문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사건의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원고가 증인들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탄핵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저로서는 의외의 일에 다시 한번 아쉬워하였습니다.
김교수가 학교 측에 유리하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한 증인들의 증언에 관하여 반대신문 하지 않은 것은, 동료교수나 학생들과 감정의 각을 세우지 않으려는 의도 같습니다. 원고가 반대 신문을 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원고가 주장한 것을 살펴서 이에 반한 증언이 있다면 재판부는 당연히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원고가 지적하는 문제출제상의 오류가 있었던 점, 학교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였다는 점, 원고의 실력에 비추어 학자로서는 아주 아까운 사람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여 이 점을 판결문에 반영하기로 하되, 원고의 말과 행동, 업무처리방식, 다른 사람들, 특히 제자들로부터의 평판 등이 교육자답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원고의 능력과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아서 원고에 대한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이 무효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를 판결서에 추가하였습니다.
네 말이 옳기는 한데, 죽어주어야겠다는 뜻으로 판결문을 작성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제자들의 평판이 좋지 않으면 대학교수는 언제든지 쫓겨 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원고의 입시문제 오류지적행위가 양심적이고 용기있으며, 정당한 행위라는 것은 저희 재판부도 판결문을 통하여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다만, 원고가 오직 자신의 학자적 자존심과 정당성을 세우기 위하여, 교수로서의 그리고 학교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범죄혐의자로 만들어 버린 그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떠한 근거에서 저희 재판부가 원고의 양심적인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학자적 자존심과 정당성은 조직의 순응 원리에 위배되면 안 된다는 어이없는 말입니다. 불의와 잘못을 지적한 것은 인정하지만 학교를 대항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은 ‘모난 돌 정 맞다.’는 상식을 모른다는 취지입니다. 성균관 대학은 조폭 조직인가 봅니다. 조직의 구성원은 조직에 누를 끼치는 행위는 죽음으로서 처벌을 받는다는 조폭의 섬뜩한 행동 강령이 생각납니다.
저는 과거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선고한 바도 있고, 법원 대내외적으로 ‘진보적인 판사’, ‘튀는 판사’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제가 주심으로 관여하였던 사건에서 담당재판부가 기득권층을 옹호하였다고 하는 것은 저희 재판부를 떠나 제 개인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란 말은 법리 용어도 아닙니다. 그럼 아무 말 없이 군대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비양심적인 사람입니까? 이를 두고 자신을 진보와 튀는 판사라고 대 놓고 자랑하는데, 이런 오버를 하는 판사들 때문에 진정한 진보세력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판사는 법규정에 따라서 판결을 해야 합니다. 이런 자가 고법의 법관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담당재판부가 전관예우나 학교의 소유자인 대기업을 의식해서 원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하였다는 말도 접했습니다. 사실 이런 말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터이므로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피고대리인은 변호사로서 활동하신지 오래되신 분이어서 소위 말하는 전관예우의 대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또한 저희 재판부는 대리인이 선임되어 있지 않는 당사자에 대해서는 법률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사자에 대한 후견적 입장을 견지하여 왔고, 그것은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은 이 사건 원고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가 ‘튀는 판사’라면, 저로서는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원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일일 것입니다. 그러한 매력이 있는데도 원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다는 것은 바로 저희 재판부가 그 대기업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입니다.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전관예우 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절대로 그럴 일 없다고 내내 잡아 때다가 있었다는 실토입니다. 변호사를 대지 않은 소송인의 후견인을 자처 한다는 재판과정과 판결이 고작 이런 것입니까?
삼성을 상대로 튀는 판결을 해보겠다는 말인데 정말 웃기는 짓입니다. 언제 튀어야 하는지 잘 아는 미꾸라지 같은 판사입니다. 횡설수설 자신을 변명한다는 것이 인정을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상 글을 쓰고 나니 시원함 보다는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합니다.
일말의 양심은 있는 가 봅니다.
역시 법관은 판결로만 말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잘 알게 된 글입니다.
이제 보니 김교수가 석궁이 아니라 수류탄과 기관총을 가져갔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