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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부자모(嚴父慈母)의 재해석

두 아들 아빠 2007. 9. 5. 13:11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롭다.’


현대에 와서는 뒤바뀐 경향이 없지 않다. 엄하게 공부와 학원으로 밀어 붙이는 엄마와 이를 말리는 아버지가 더 많다. 엄하기 보다는 친구 같은 아버지상이 더 칭송 받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요즈음에는 보기 드물지만 예전에 신입사원들의 자기 소개서에 “엄하신 아버지 ~와 자애로우신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로 시작하는 글이 읽으면서 쓴 웃음을 진 적이 있다.

‘엄부자모’를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경칭으로까지 불렀기 때문이다.


‘엄하다.’ 를 무섭거나, 권위주의적이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자체가 문제며 왜곡의 실체다. ‘엄하다’는 ‘경우 있고’ ‘조건이 있으며’ 자신이 세운 규정에 자기 스스로도 엄히 잘 지킨다고 해석해야 맞다. 자애로운 어머니상은 자녀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에게 해야 한다.


어머니의 양육은 ‘조건 없는 사랑’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는데 ‘조건 있는 사랑’이며 ‘가르침의 사랑’으로 확산된다. 그런데 억울함으로 인한여 가르침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은 ‘인정(人情)있음’으로 승화되고 아버지의 조건 있는 사랑은 ‘경우 바름’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바지 할 수 있다. 남편이 경우 바르지 못하면 그의 아내는 남편과 같이 사는 한, 볼 것도 없이 막무가내 형이다.


인정이란 실체적이고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혀만 차는 일은 남의 어려움을 보고 오히려 자기만족감을 느끼는 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유교문화의 조선시대에는 곳간의 열쇠를 아내가 맡았다. 그래서 안사람으로 하여금 인정을 배 풀게 했다. 그게 경우 있는 남편이 해야 하는 도리다.

 

자기 지갑은 두둑하고 아내에게는 겨우 살림비만 주어서는 자기 부인을 아주 이상한 여자로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