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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운 이명박의 물 사랑

두 아들 아빠 2009. 6. 9. 14:25

1941년12월19일 오사카 태생인 이명박은 넘치는 불의 기운을 타고 났다고 한다. 그는 실제 뱀띠이며 관상학으로도 뱀의 형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꾸 쥐라고 하니까 잡히지 않는 것이다. 눈을 봐라! 그게 어디 쥐눈인가? 독사의 눈이지!

 

기독교인이 사주팔자를 보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지 않고 인간의 역사를 믿는다면 다 사이비다. 아마도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봤는가 보다. 그래서 불의 기운을 물로 막아 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서울 시장을 하자마자 청계천 물길을 열었다. 그게 대통령으로 가는 발판이 되었을까! 서울로 진출입하는 동서쪽의 차선이 무려 편도 5개나 줄어들었다. 이를 시내버스 전용차선으로 대치했으나, 극심한 도심체증을 불러 와서 시민들이 승용차를 끌고 나오지 못해 도심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남대문이 불에 타 버렸다. 재앙의 예고가 아닌가 싶다. 기획재정부 장관에 강만수, 경찰청장에는 어청수, 모두 ‘수’자가 들어 간 사람들이다. 강만수는 순식간에 국고를 말아 먹고, 어청수는 청계천의 촛불을 폭력 진압과 물대포로 껐다. 이명박 정권의 좌청룡, 우백호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제 다 직분을 잃었다.

 

2008년 1월에 경기도 이천의 코리아 냉동 창고에서 용접으로 인한 불이 나서 40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 난지 1년도 채 지나지 아니하여 동년 12월 또다시 이천의 물류센타 화재로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사이에 2008년 10월 고시원 방화 살해 사건, 이어서 설을 불과 몇 일 앞둔 1월20일에 용산에서는 무고한 철거민들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불에 타죽었다.

 

한 달이 지난 2월 11일 경남 창녕의 화왕산에서 불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불에 타죽었다. 이후 뉴스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9일 노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200m 떨어진 뒷산에서 화재가 났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44일 만인 5월23일에 비극적이 사태가 벌어졌다.

 

수도 한양이 관악의 불기운을 막기에 한강의 자연수만으로는 모자라 풍수지리상의 안전장치를 몇 가지를 해 두었단다. 한강을 넘어 남대문의 현판을 세로로 했으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울역 부근에 남지라는 연못을 팠고, 불기운을 비켜가기 위해서 광화문 앞대로는 정남향이 아닌 좌측으로 비스듬하게 냈다. 여기에다 광화문 앞 좌, 우측에 불기운을 막는 해태상을 세우고 광화문 안쪽 경복궁 앞에 동서로 물길을 파고 다리 앞에 작은 해태상을 세워 두었다.

 

이제 남대문은 불에 타버렸고, 남지는 없어 졌으며, 해태상은 광화문 복원으로 치워졌다. 오로지 관악의 불기운을 막는 것은 서출동류로 인공적으로 물을 흐르게 한 청계천 밖에 없다. 촛불이 청계천에서만 했기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관악의 불기운은 서울대를 통해서 멈추지 않고 계속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 바로 서울대 교수들의 대운하 반대와 시국선언이다. 서울대에 이어서 각 대학과 기독교 진보 단체들도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노전 대통령의 서거직후 북한은 연이어 핵실험과 불기둥이 치솟는 미사일을 연신 쏘아 대고 있다. 국민장을 치룬지 단 열흘이 지나서 대운하 사전 공사로 의혹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또 물타기를 하고 있다.

 

대선 공약으로 경부대운하를 하겠다고 했는데 물 사랑과 무관하지 않다. 물류가 주목적인 대운하가 관악의 서울대의 반대로 무산 되자 4대강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여전히 강에서 삽질을 하자고 한다. 이쯤 되면 이명박의 물 사랑은 정책을 넘어서 신앙이 아닌가 싶다. 불에 타 죽기 싫으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 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