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종이시대의 마지막 화상(畵商) 이문열

두 아들 아빠 2010. 7. 4. 18:00

  제아무리 인터넷이 맹위를 떨쳐도 앞으로 오래 동안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는다는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 이유로, 인류의 관성이란 그리 쉽게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장문의 글을 모니터로 보는 것은 무척 피곤하고 글 읽기에 장소와 기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이문열씨가 책 출간을 앞두고 또 홍보성 발언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자신의 책 출간을 앞두고 항상 어딘가 가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먼저 번에는 촛불시위에 대항할 의병논을 이야기 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으며 그 말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비방이나 억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하에 이글을 쓴다.

 

  이문열씨에 대한 시비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것부터 말하고자 한다. ‘균형감을 잃었다.’는데 있다. ‘천암함 사태’에 대해서는 울적해서 술 마시고, ‘용산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집단소통’이라면 모를까 인터넷이 ‘집단지성’이라고 설정했는데 그 말을 누가 했으며 그것에 대해서 대개의 사람들이 인정하느냐고 되묻고 싶다. 이런 걸 보고 ‘설정의 오류’라고 한다. 그 뒷말은 들으나, 마나다.

 

  이문열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깜도 안 되는 무지렁이들이 사회적 이슈화 하는 것을 기분 나빠 한다. 자기 시대는 자격이 갖춰진 사람들만 말과 글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시대가 가는 것을 화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심리저면에는 아직도 빨갱이 아버지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현상이 겉으로 들어 난 것을 살펴보면, 군중이 광장에 모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인민재판이나 좌익처단 집회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붉은 옷을 입고 모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했기에 월드컵 열기를 히틀러 시대의 광기에 대입한 일이다.

 

인터넷 때문에 노무현이 죽었다는 논리는 참으로 작가적 상상이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싶다. 그의 아버지가 골수 빨갱이가 되어서 스스로 월북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상상력으로 비유해 말하자면, 마르크스 때문에 그렇다고 할 것인가? 일제 치하에서 민족을 압제하며 떵떵 거리던 자들이 해방정국에서도 똑 같이 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대륙과 바다로 막힌 좁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치는 전쟁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이문열은 그 피해자의 한사람이다. 그런데 그 피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이문열의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시대의 변화를 개인이 막을 수 없다. 그저 빠르게 순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아주 현명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주한 그룹에 아주 충실한 화상(畵商)이 되었다.

 

‘삶을 소설로 쓸 수는 있지만 삶 자체가 소설은 아니다.’ 소설가들이 가장 우려해야 할 말은 바로 “소설 쓰고 있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