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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의 재앙

두 아들 아빠 2016. 8. 17. 19:41

1978년 마이클 하트가 발간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구론’(1798년 출판)의 저자인 맬서스를 80위로 소개되고 있다. 좋고 나쁜 영향과 관계없이 말이다.

 

인구론에 따르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출급수 적으로 늘기 때문에 식량부족으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려면 산하제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인류에 악영향을 끼친 순위를 최상위로 올려야 한다. 바로 저출산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가 1797년 성공회의 성직자로 서품되었다는데 당시 영국의 성공회는 허접한 상태였던 것 같다. 과학적 지식을 떠나 창세 때 하나님의 명령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을 거부하는 근거를 제공한 사람에게 서품을 주었으니 말이다. 농사를 사람의 힘으로만 짓는다는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맬서스(1766~1834)는 자식을 내다 버리다 시피 한, 교육학의 대가 장자크 루소(1712~ 1778)와 교류를 나눈 부친에게서 사상적 기반을 닦았다는데 다원(1809~1882)의 진화론에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1818~1883)는 예수 이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위인답게 인구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시인 셸리는 오죽하면 맬서스와 함께 천국에 가느니 베이컨과 함께 지옥에 가겠다.”고 했을까?

 

그런 맬서스는 1940년대 록펠러2세에 의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수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을 동원해 맬서스 이론을 미국 경제의 판을 바꾸려는데 이용했다. 식량위기 해결책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합성비료, 살충제, 제초제로 지구를 덮는 화학혁명과 유전자조작 농산물까지 만들어 졌다. 이들은 모두 록펠러재단 산하의 석유회사와 화학회사, 제약회사가 주도했다.

 

멜서스가 말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일본의 단카이세대(1947~1949)와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4)는 미래 식량재양을 예고했지만 그들 세대만큼 잘 먹고 잘 산 세대는 없었다. 오히려 인구가 줄어든 요즈음 젊은 세대가 더 어렵게 산다.

 

과거 박정희부터 전두환, 노태우까지 군사독재정권들이 일관되게 밀어붙인 정책은 산아제한정책이었다. ‘악한 곳에서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1974년생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인데 그 해는 국가가 임신을 하지 않는 해로 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