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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장무 서울대총장 선임을 바라보며(펌)

두 아들 아빠 2006. 7. 25. 08:45

조선사편수회

민족사학의 거두 박은식이 중국에서 지은<한국통사>와<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국내에 유입되자 당황한 조선총독부가 이에 맞서 조선사 왜곡을 위해 급조한것이 '조선사편수회'이다

일제의 조선사료 강탈기간 중이던 1916년 1월 중추원 산하에 조선 반도사 편찬위원회가 발족되어 1922년12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바뀌었다.조선사편찬위원회는 일본민족의 우위성을 고취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사 왜곡과 민족의식을 배제하여 일본 민족의 우월성 함양을 위해 설립된 어용학술단체였다.그러다 학문적으로 더욱 권위있는 기구로 만들기 위하여 1925년6월 일황 칙령에 의해 조선사 편수회로 명칭을 바꾸고 독립된 관청으로 격상하면서 조직이 확대개편되었다.

1925년 10월 8일 제1회 위원회를 개최했으며 1910년 11월부터 1937년까지 27년간 전국을 누벼 조선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했고  1932∼1938년 식민사관에 바탕한 조선사(37책),조선사료총간(20종),조선사료집진(3책) 등을 간행하였다.

위원장급인 회장은 현직 정무총감들이 맡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일본인들을참여시켰고 고문에 부일역적들인 이완용, 권중현을 앉히고 박영효 이윤용을 비롯 일본인 거물들과어용학자들을 위촉하였다. 고문·위원·간사와 편찬사무를 담당하는 수사관 3명 수사관보 4명 서기 2명을 두었다.

 

이병도 박사

이러한 조선사편수회에 무려 13년(1925~1938) 동안 몸 담으며 친일 역적행각을 벌이며 민족혼을 말살하는데 앞장섰던 장본인이 바로 현 서울대 이장무 총장의 조부인 이병도박사인것인다.이병도박사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가 이마니시의 수사 관보라는 직함을 맡은 이래로 단군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 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 서온 인물이다.

이병도 박사는 와세다대 유학 시절 사학과 교수였던 이케우치 박사의 추천을 받아 촉탁으로 근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초기에 촉탁으로 근무하던 그가 이마니시의 수사관보로 승격한 것은 그가 얼마나 우리민족의 영혼을 박탈하는일에 혼신의 열정을 쏟아부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이병도 박사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친일매국행각을 벌이는동안 또 다른 역사가인 백남운(사회경제사학파의 대부)선생은 옥고를 치렀고,신채호(민족사학파의 대부)는 망명의길을 선택했다.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군을 사냥했던 죄업 때문에 해방이 되자 한때 지하로 숨었다가 정부수립 직후 도리어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는 심복으로 변신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특무대장 김창룡이 옛 부하들에게 암살되자 이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묘비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낯부끄러운 엉터리 찬사문구를 집어넣은 비문을 지어바쳤던 적이있는 이병도박사다.

이병도박사는 또한 친일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과 같은 우봉이씨의 같은  가문이며,가문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해 원광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이완용의 관뚜껑 을 일방적으로 태워버린 전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이병도가 이완용을 자신의 조상으로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이완용 콤플렉스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 할수 있는 사례라고 할수있다 

이후 이병도박사는 매국의 댓가로 이병도 사관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국사학계에서 실증사학파의 독보적인 대부로 영향력을 발휘해왔으며 이병도 박사의 5남중 무려 3명이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이병도박사의 차남인 이춘녕 서울대 농업 생명과학대 명예교수가 이총장의 아버지이고 이춘녕 명예교수의 두 아들이 이장무 서울대학교총장과 이건무 국립 중앙박물관장(차관급)이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

지난 5월 11일에 진행된 서울대 총장후보 선거 결선투표에서 친여 개혁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조동성 경영대 교수와 친일파의 손자 이장무 후보가 결선투표를 벌였다.

그 결과는 교수들 투표에서는 조동성 490표 vs 이장무 494표로 이장무 박빙우세 교직원 투표에서는 조동성 0.7표(7명) vs 이장무 30.4표(304명)로 이장무 압도적 우세로 결국 이장무교수가 서울대 총장후보로 선출 되었다(교직원에게 0.1표씩 부여)결국 교수들이 아니라 교직원들의 성향에 의해 투표의 성패가 갈린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와의 대화를 통한 교직원 승진기회 확대, 교직원 아파트 500가구 추가 건립, 교직원 휴양소 활성화 및 신설 등을 내건 이장무 후보의 공약이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도 있으나 그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선거결과가 나왔다.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친여성향의교수가 서울대총장으로 임명될경우 서울대가 개혁의격랑에 휘말리게 될수도 있을거라는 막연한 불안심리가 교직원들의 몰표를 불러온것으로 추측된다는 해석도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

 박은식 선생

신채호선생은 박은식선생과 함께 한국 근대 역사학과 민족사학의 비조로 불린다.그러나 그가 제대로 된 학술적 평가를 받기 시작한것은 부끄럽고 놀랍게도 1970년대에 들어와서였다.그것도 역사학자가 아닌 다른 학문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병도가 해방 이후 서울대 사학과(한국사 분야)를 접수한 뒤 주류 역사학계는 이병도 후학들에 의해 장악됐다.그렇게 이병도 사관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신채호 같은 인물은 철저히 잊혀진 인물이 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병도의 두손자인 이장무 서울대총장과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친일파의손자라는 이유만으로 문제시 되는것은 현대판 연좌제나 다름없는 것으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것이다.

이장무 총장과 이건무 관장이 문제시 되는것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업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조부의 잘못된 역사관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고 조부의 배경속에서 성장해가며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가치관들을 물려받은 제자들을 통해 과거의 잘못됐던것들을 바로 잡고자 하는 노력까지도 송두리째 찍어 누르고 있기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실증 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것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발언이나 이병도박사의 친일논란과 서울대총장선거와는 별 관계가없는것이라고 태연하게 얘기하는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발언만 두고보더라도 그렇다.  

일제시대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댓가로 우리 나라가 각 분야에서 겪고 있는 후유증은 일일히 열거하는것조차 힘이든다. 그들이 구축하여놓은 기득권이 얼마나 탄탄하고 그것 이 우리사회에 끼친 폐해가 얼마나 크며 그것들을 혁파하려고 노력할때마다 얼마나 많은저항에 부딪혀가며 얻는것도 없이 사회적 에너지를 소진해왔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있으며 지금도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장무 교수가 서울대총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한번 바라보자.우리들이 개혁대상으로 주로 언급하는 학계의교수들 그교수들보다도 정작 내부개혁의 중심쪽에 서 있어야할 교직원들이 더더욱 사려깊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현상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작 문제의 당사자들은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만 그 잘못된 문제를 제대로 고찰하지 못하고 잘못 함몰돼어 있는 사람들이 그 문제의 정확한 본질을 들려다 보려는 노력들을 방해하고 폄하하고 있는것이다.    

예를들어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소수 기득권들이 일으키는 사회적 병폐를 지적 하려고 시도되는 노력들은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정작 엉뚱한곳의 엉뚱한 사람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는것으로 인해서 무너지고 만다.

이사회의 기득 세력 몇몇만이 반발하고 나선다면 문제해결은 의외로 쉬울수 있다.그러나 정작 일반 서민들이나 중산층을 상대로 조사 해보면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수있다고 우려하며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된다.

한겨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서 서울대 이장무 총장의 선임을 놓고 노무현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2위 후보인 조동성교수를 선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노무현도 결선투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많은 고심을 했을것이라 생각된다  일반교수들이 압도적으로 이장무교수를 지지하고 교직원들이 반대하였더라면 이장무교수가 최종후보로 선출되었더라도 반대권을 행사했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그러나 노무현도 잘못된 결정을 받아들였다.그 과정에 어떠한 고심이 반영됐던간에 지적받아 마땅한것이다.

예상외로 교수들이 이장무 조부의 친일 행각을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으로 점철시키는 모습도 보여준 반면에 서울대 교직원들은 정작 그들이 오랫동안 투쟁하여 처음으로 서울대총장 선출과정에  참여한 의미를 크게 퇴색시켜 버렸다.

정작 서울대 교직원들은 노무현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노무현이 민주적인 절차로 결정된 결정을 거부했다고 반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지나친 오바일까?조중동이 침묵하는 와중에 이장무 조부의 친일행각을 부각시키고 나선  진보개혁 언론의 행보는 훌륭하다.그러나 이번사안에 투영된 민의의 역전 왜곡현상에 대해서도 성찰했더라면 조금 더 좋았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서울대 총장 자리에 임명된자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선 매국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전혀 보도 하지않는 조중동이야 오래전에 포기한 언론이라지만 이번사안의 본질을 조명한 진보개혁 언론도 서울대 총장이라는 자리를 교직원 아파트나 휴양소건립같은 복지문제만을 바라보고 투표한 서울대 교직원 행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려 들지않고 있다.

수구 보수적인 경향의 교수집단 조차도 반반으로 팽팽하게 양분된 사안에 서울대 교직원 노조가 어떻게  98%(304표)의 몰표를 던질수 있다는 말인가?        

출처 : 까몽의 블러그
글쓴이 : 까몽이예요 원글보기
메모 : 대한민국의 역사는 왜곡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