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의 그늘

두 아들 아빠 2006. 12. 27. 20:34
아버지의 그늘

내가 좋아하는 시인 /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겨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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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에 작가의 정신세계


시속에서 아버지는 광산임자에게 돈을 주고 일정기간 동안 채광을 하는 분광(分鑛)의 주인이었다. 당시 중원군에는 큰 금광이 있었다. 광산촌은 돈이 많이 돌지만, 일은 고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술로 인생의 고단함을 달래기 마련이다.

마당에 광부들이 돼지를 잡고 순대를 만들면서 왁자지껄한 풍경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때가 막 해방이 된 시기라 작가의 나이는 열 살 내외였다.


할머니의 종주먹질은 아들에게 한 것이지만, 돈 잘 벌고 호기로운 아들이 내심 자랑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속 썩는 며느리 보기 미안해서 요즈음 말로 ‘할리우드 액션’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어서 입을 꾹 담고 술국을 끓여 내었다. 만일 며느리가 아침에 자기 아들에게 먹일 속 풀이 술국을 끓여내지 않았다면 며느리에게 뭘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의 속을 달래야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짓이지만 당시에 술 취한 술집 작부를 엎고 오는 일은 황당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겨 먹으려고 그 짓을 한 것이다.


예전에(지금도) 아버지는 가정 안에서 최고의 권력자다. 그의 말과 행동이 곧 법이다. 누구도 반대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없다. 신 경림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심리적으론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한을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은 유약한 그를 더욱 소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의 호기로움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타고난 성격이 결코 호방하지 못하기에 아버지는 자신이 넘어 설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같어지고 싶지만 절대로 같어 질 수 없는 상황은 좌절을 낳는다. 아버지를 자신에게 투영하여 일체화를 시키려하다가 실패하면 분노심이 생긴다. 이를 극복하여야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어른이 된다.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이다. 그래서 지독한 골초는 대게가 아버지가 골초였다.


이 시에서 자신과 아버지와의 직접적인 대면은 단 한 구절도 없다. 그래서 제목이 ‘아버지의 그늘’인가 보다. 신 경림은 아버지로부터 주목받지 못한 아이였던 것 같다. 당시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한 모습이 아니었기에 그저 멀찌감치 서서 관망자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글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이성적인 대화를 한번이라도 나누었다면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할 정도는 아니었을 일이다.


그의 시가 떠서 인세를 꽤 받기 전에는 그는 룸펜에 가까웠다. 노름으로 밤을 세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사별한, 아내를 시켜 술을 사오게 하여 당대의 시인들과 밤을 세워가며 시를 논하고 더러운 세상을 한탄했다.

아버지의 그늘은 삶의 어디에선가 핏발 돋는 모습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겨 먹으려고 처절하게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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