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적으로 말 하면 월급쟁이는 아무리 급여를 많이 받아도 부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월급을 많이 받으나, 적게 받으나 규모에 맞는 씀씀이가 있기 때문에 자녀들을 양육하고 혼인시키고 나면 남는 돈은 거기서 거기다. 두 경우 다 인생을 크게 어려움 없이 순탄히 겪은 사람은 행운인 것이다.
애초부터 부자가 되려는 욕심이나, 마냥 돈에 대한 갈급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내적인 행복감에 노력하길 권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직장에서 승진이나 급여에 목을 매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지 말며, 직장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성에 더 신경을 쓰고, 무엇보다 직장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라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주문을 외워야 한다.
직장은 일을 하면서 힘이 들기도 하지만, 일하는 동안은 개인적인 고민을 잊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함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점심시간에 잠시 아내에게 전화도 하고 부모님께 안부도 전하면 더욱 좋다. 작장 생활을 즐기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다. 출장 시 일에 지장이 되지 않으면 아내와 함께 가는 것도 좋다. 휴일에 밀린 일 때문에 근무를 해야 하면 아이들도 대려가 보자. 빈자리에 앉게 하여 컴퓨터도 하게하고 비싼 음식이 아니더라도 아빠가 즐겨 먹던 점심을 함께하면 더욱 좋아한다.
지금의 중장년들은 집을 마련하려고 많이 힘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 값으로 아애 집사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은 많았으나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본 사람은 극소수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가격이 올랐다고 좋아 하는 사람만큼 바보도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자녀가 둘 이상 있는 사람은 오른 집 값 만큼, 자녀들도 힘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렵게 샀다고 집의 개념을 마치, 목숨 다음으로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는 가정은 외적인 조건을 더욱 중요시 한다. 겉치래로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보여 줄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가치의 우위와 이로 인한 전환적 생각은 경제적으로 바닥을 처 본 사람은 잘 안다. 힘든 일을 당했지만 보통사람의 생각과 의식을 뛰어 넘는 실력을 쌓은 것이다.
새 가구를 드리고 싱크대를 최신형으로 바꾸며,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때마다 여행을 다니는 등, 이벤트에 충실 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잠시 뿐이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다투는 일도 벌어지거나 무리한 지출로 이후에 생활을 견디기 식으로 나간다면 다 돈 지랄이다.
평상시 삶이 행복하지 않기에 이벤트에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래서 이벤트가 걸러지거나 끊어지며 꽤나 우울해 한다. 이벤트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에 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어서 잔치를 하는 것이지 잔치를 해서 기분이 좋은 게 아닌 것과 같다.
한때는 월급쟁이를 하찮게 생각하는 시절이 있었다. 고용은 계속 증대되고 장사가 잘되던 호황기 때 인데, 자기 몸 하나 일해서 돈을 벌어 오기 때문에 밑천을 드리고 노동을 함께 하는 장사보다는 안정성 면에서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유리하다. 고용이 정체되고 장사가 잘 안 되기에 이제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자체가 사회적 특권이 되었다.
기업주들은 자기 고용인이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흔들기를 시도하는데
이를 잘 살펴서 대처해야 한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공명심을 이용하여 고용인끼리의 경쟁과 감시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로가 끊임없이 다투게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구조를 만든다. 직장인은 이런 면에서 어려운 것이다.
직장에서 지위가 오르면 인사권이 쥐여지는데 인사권은 양날의 칼이다. 그래서 잘못 휘두르면 칼등의 날에 자신이 베일 수 있다. 권력의 속성이 다 그렇듯이 잘 못 쓰면 자신에게 회를 미치게 된다.
과거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공명심이 높은 사람을 골라서 그 책임자로 내세웠다.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고 해도 나간 사람이나 남아 있는 사람 중에도 억울함이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이 끝난 후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책임자를 마지막에 내 보내는 것이 규칙처럼 되었다. 그런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왜 내가 그런 일에 나섰는지 모르겠다. 뭔가 홀린 듯한 기분이다.“ 그 친구는 그 회사 퇴직자 모임도 못나가고 완전이 왕따가 되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과 이로 인한 한계를 느끼고 이에 맞는 생각과 행보를 한다는 것은 큰 지혜로움이 아닐 수 없다. 노력과 열심을 낸다고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시기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할 때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 자기 노력만으로는 살아 갈 수없는 복잡한 관계성 속의 그저 작은 나사에 불과하며, 노력보단 다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
심리적이고 내적인 행복감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성취했을 때 배가 된다. 그런데 성취의 대상이 문제다. 사회 관계적이고 외적인 성취욕은 달성했을 그때뿐이지 지속적이지 못하다.
이벤트와 같은 속성이 있다.
가정을 이룬 사람들의 성취감은 가정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지 경제 활동의 성취가 곧 가정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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