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들과의 목욕

두 아들 아빠 2010. 2. 2. 22:54

 

 

위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될 책에는 아주 감성적인 표현으로 글을 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책에서 그 글을 빼지 않은 이유는 내가 40대 초반에 느꼈던 감성이기 때문이다. 꼭 지켜야할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고 살아 온 한 과정이다.

 

 

아내가 아는 글쓰기 선생님이 그 글을 읽고 칭찬을 했기 때문에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 성인에게 칭찬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부터 되먹지 못한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다.

 

 

50대를 넘겨 아들과의 목욕을 다시 쓰라면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쓰고자 한다.

어렸을 적에 워낙에 몸 씻기를 게을리 했던 네가 어느 날 목욕을 꼭 해할 일이 생겼나 보다. 아마도 다음날 학교에서 신체검사가 있었던 전날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 목욕은 떼를 벗기는 데만 목적이 아니라 뜨거운 물로 몸을 푸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네가 어렸을 때는 오로지 묵은 떼를 벗기는 일이 목적이었다.

 

 

목욕을 가기 전에 더러운 발을 씻으려고 하니까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욕탕은 떼를 벗기러 가는 곳이다. 그러니 거기 가서 씻어라 목욕탕에서 떼가 있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그 밖에서 들어난 네 몸의 떼가 부끄럽다.”

 

 

목욕탕에 가기 전의 떼와 가서 열심히 밀어야 하는 떼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에 붙은 떼처럼 개인이나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손잔등에 들어 난 떼도 있고, 양말을 신은 발처럼 들어나지 않는 떼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영혼의 떼가 있다고 본다.

 

 

누나들과 여탕을 가지 못하게 된 첫날, 큰누나는 날 목욕탕 떼 밀이 분에게 부탁했다. 그 떼 밀이는 열심히 밀어 주는 게 아니라, 네 몸의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떼가 많다고 입을 씰룩거렸다. 자기는 목욕탕에서 근무하기에 떼가 붙어 있을 여유가 없으니까!

 

 

참 죄송하지만 그 이후로 목욕탕에서 두 아들을 씻기느라 녹초가 되어도 떼 밀이 분에게 내 두 아들도 그렇지만 내 몸을 맡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