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빠는 이래서 있단다!

두 아들 아빠 2010. 10. 15. 17:32

 엄마는 자길 이뻐해 주고 냉장고는 맛있는게 있으며 강아지는 자기와 놀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와 냉장고 그리고 강아지는 있어야 할 존재가 분명한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의 시라고 한다. 이 시를 읽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서글프다고 한다. 아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냉장고-강이지-아빠에 대한 연관성을 알지 못하는 그냥 아이의 생각일 뿐이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이란다. 이 웃기지 않을 이야기에 비하면 시를 쓴 아이는 앞에 두 가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조건은 확실히 갖춘 일이다. 존재감 없는 아빠!

 

둘째 아이 유치원에서 아빠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간 적이 있었다. 유치원 벽에 아이들이 '부모님께 바라는 것'이라는 주제의 그림과 글이 쭉 붙어 있었는데... 죄다 아빠가 문제였다. '아빠 일찍들어 오세요!' '아빠 담배 좀 끊으세요.' '아빠 술 좀 조금만 마시세요.' '나하고 놀아 주세요!' 낯이 확끈한 글도 있었다. '아빠! 엄마와 싸우지 마세요!' 우리 애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ㅎ

 

아버지가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빠가 돈을 벌어오기 위해서 가정이 존재하는 듯한 현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교 2학년 이라면 아직은 가족 중심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때고, 자아관은 미숙할 때다.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고 아침 일찍 나가서 늦께 돌아 오는 아버지는 휴일이 아니면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휴일도 낮 잠을 자는데 시간을 보내버리면 아이는 더 아빠와 있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왜 있는지 모른다고 한 것이다. 아주 솔직하게 말한 것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혹여 엄마가 무심코 흘려버리는 말로 "너희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아이가 들었을 수도 있다.

 

많은 시간 떨어져 있고, 함께 하지 못한다고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감이 없을 수는 없다. 아버지란 천부적으로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열살이 되지 않은 아이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신적인 존재다.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는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왜냐하면 밖에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걸 보고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은 있지만 표현이 서툴고 실행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 시를 읽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위기감과 더불어 반성은 해도, 힘이 빠질 일이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주목을 끌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란 자리는 늘 어딘가에 굳건히 서있는 바위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자아가 성립되가는 10살부터 사춘기를 넘기기까지 아버지는 어떤 방식이 든 아이와 관계성을 맺고 교류가 있어야 한다. 일요일 마다 산 엘 같이 간다든지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아이의 공부를 확인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앞서 말했지만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게 부모들이 그냥 지나 칠 때가 많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신호를 보낸다. 아이의 시도 그 중에 하나 일 수도 있다. 부모와 거리감이 점점 생기는 것 중에 하나는 세대 차이다. 부모의 어렸적을 회상해서 아이을 대하면 점점 그 차이는 커진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부모는 변화의 과정을 다 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아이는 세계관과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전혀 다르다.

 

혹 아이가 묻거든(묻기 전에 먼저 할 필요 없음)

 "아빠는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 집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