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내시경실이 집중되어 있는 보호자 대기실 풍경이다.
곳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있다. 모두가 바쁜 월요일 오전에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 것을 보면 환자의 부모, 남편, 부인, 자녀, 형제, 자매임이 분명하다.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전화로 다른 가족에게 상황을 전하면서 결과를 재촉하는 듯한 물음에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서 검진을 받는 사람은 시시한 위염이나 위궤양으로 온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암'이라는 무서운 딱지를 지고 온 사람들이다.
동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후 온 가족이 눈물바다를 이루고, 혹시나 오진(誤診)이기를 기대하고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나보다 네 살 위인 누나가 검사실에 들어갔다. 집 근처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이 병원에서만 두 번째 초음파 내시경 검사에 들어 간 것이다. 병실에 있는 검사안내서에는 약 20분가량 소요 된다고 하는데 한 시간이 다 되어서 나왔다.
지난 토요일 누나와 단 둘이 병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에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왜 하필 내가 걸려야 하나’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질병은 누구나 예외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동생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누나의 진정한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이 ‘이 세상을 공의롭게 다스리심’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죄악 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이다.
기도란 인간과 고도한 인격자이신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인격자간의 대화에서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면 안 되는 일이다. 기도를 통해서 남을 기르치려는 행위는 가증스러움이고, 기도를 한답시고 장황하게하거나 중언부언을 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며 난리를 친다면 그 어찌 인격자가 인격자께 드리는 기도 인가?
아주 어린 심정의 기도는 그럴 수도 있지만, 교회를 10년 넘게 섬기면서도 그런다면 믿음의 심성이 전혀 자라지 못한 경우이다. 오죽하면 한국의 교회에서 하도 시끄럽게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말이 나왔을까!
기도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을 간구하는 것이다.
어려움이 닥쳐서 하는 기도 이전에 그동안 내 삶을 평안에게 이끌어 주신 감사의 기도가 있었어야 한다. 기도의 간절함은 동일해야 한다. 그렇게 했다면 기도 이전에 주께서 내게 주신 시험을 잘 이해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올바른 기도이며 분명 하나님이 들어 주심은 물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삶을 잘 엮어 갈 수 있다.
중보기도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쏘는 광선포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세상적인 어려움을 당한 어느 성도를 위하여 기도를 하자고 공지를 한다. 올바른 표증이 있는 교회의 권위 아래 성도 모두가 집중기도를 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매이고 풀릴 수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다.
이는 사람의 영적인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도로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과 진정으로 함께한다는 동참의 의미이다.
동정이나 자기 위안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닥칠 시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 하려는 아주 연약한 심성이다.
모두가 눈앞에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삶을 살피지 못 할 때 육신의 질병은 이를 깨우치게도 한다.
다행이 초기 암이며,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누나의 가정이 이를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삶에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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