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작은 누나

두 아들 아빠 2006. 8. 2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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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유난히 혼자만 키가 작은 작은 누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운구차가 집을 떠 날 때 나는 아이들과 놀고 있었고, 마당 한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혼자 울던 누나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처음으로 대려 왔는데 나와 친구를 위해서 국수를 삶아 주었던 누나

 

옥수수빵을 먹지말고 가져오라고 떼를 쓰던 나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은 누나

 

먹을 것은 나에게 흔쾌이 양보했던 누나

 

동네 가게에서 인형 딱지를 같이 훔쳤던 누나

 

언젠가 머리를 너무 짧게 짤라서 저녁 내내 울던 누나.

 

그 이듬해 코밑에 어른 한 뺨이 넘는 대침을 맞고는 자지러지게 놀라던 누나

 

일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남보다 일년 늦게 중학교에 입학한 누나

 

 

 

여중시절에 국어 선생님이 동시 '자전거'의 저자라고 좋아했고, 자기가 쓴 '별'이라는 시가 학교문집

 

에 실려서 기뻐했던 누나

 

고등학교 평준하 첫 해에 대한민국에서 똥통이라는 여고에 배정 받고 울던 누나

 

고3 때 집안 살림을 다하면서~ 큰누나가 사준 세탁기를 너무 고마워했던 누나

 

 

 

일류 여대의 영문학과를 입학하고도 집근처가 아닌 대학을 가서 아버지의 서운함을 느꼈을 누나

 

대학 입학식 때 큰누나가 입었던 낡은 코트를 자랑스럽게 입고 간 누나

 

대학 새내기 때 영어연극반에 들어서 늦은 귀가로 아버지께 혼이 났을 때 나와 비교 하다가 아버지의

 

황당하신 말씀에 말문이 막힌 누나.  '걔는 남자다!'

 

지독히 추웠던 누나의 대학졸업식.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도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집에 와서 김치를 담가주던 누나

 

내 첫 사랑의 여자에게 상당한 돈을 주며 옷을 사 입으라던 누나

 

군대간 동생에게 학급 여고생들에게 위문편지 쓰라고 하고 그 편지와 함께 과자를 한 상자 보내 준 누나

 

군대 제대 후에 명동의 백화점에 데려가서 양복을 두 벌 사 준 누나

 

총각시절에 실업자인 동생에게 싫은 소리 없이 수년간 용돈을 주던 누나

 

그런 누나였습니다.

 

 

 

위가 너무 작아서 검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고가 났습니다. 의사의 잘못도 분명 있었습니다.

 

일주일 이상 금식을 하고 위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작은 위를 반이나 떼어낸 누나의 검붉은 위를 보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 가족을 모두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큰아이가 고모를 위해서 위문 공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병원 한 쪽 구석에서 음악은 없었지만 멋지게 춤을 추었습니다.

 

춤사위에 나름대로 의미도 두었습니다.

 

 

돌아 오는 차 안에서 옥수수빵 이야기를 했더니 큰아들이 아빠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누나 생각이 일시에 복받쳐서 아이들 앞에서 울었습니다.

 

오랜 만에 큰아이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번 시련을 통하여 누나와 혈연의 관계중심을 넘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 앞에서 고백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 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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