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에서 중년 여성이라 함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를 지칭하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중년’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중년’ 이라함은 어딘가 칙칙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애써 외면을 한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여인의 뒷 모습 같지만, 등골이 드러나고 피부에 탄력이라고는
느낄 수 없으며, 주목 할 것도 없는 곳에 시선을 둔 '허망한 여인의 슬픈 뒷 모습'입니다.)
언젠가 시인 신 달자씨가 종교 소식지에 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유와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십대는 영혼이 황폐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침에 깨우는 말소리가 개가 짖는 듯 하였고, 자신은 그러하지 않을 것을 맹세 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문득 발견하고 소회를 밝힌 글이었다.
지적인 수준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중년 여성은 삶에 어려움을 느낀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noon of life)’라고 했다. 중년이 되면서 인간은 이전까지 외형적인 것에 치중했던 삶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강렬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 결과 30대까지만 해도 직업적 성취를 위해 집중해 쏟던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에 쏟아 붓게 된다고 한다.
남자들은 이 시기에 자아를 찾는다면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개인 취미에 빠지기도 하며 간혹 불륜의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양쪽 다 여성을 억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회생활을 한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들은 자녀양육과 살림살이를 한 지난 과거에 관하여 자부심을 갖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렇게 공을 들인 자녀들로부터도 존중을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남편이 이를 알아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남들도 다한 일이라고 자신들이 행한 숭고한 사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가치기준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자녀의 생산과 양육을 하찮게 여기는 풍조야 말로 중년의 여성을 억울하게 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일을 하는 여성들은 본연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이로 인한 권익도 없으면서 일과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주 강력한 사슬 앞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늘날 여성들은 자신들이 억압을 받고 있다는 의식을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방법이 교묘하게 진화되어 그렇다.
이상은 외적인 억울한 구도이며 여성 자신의 내면적인 억울함의 생성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자아 상실’이다. 자신의 가치 기준을 자꾸 타인에게 의존하는데 있다.
어려서는 아버지나 오빠, 성장해서는 애인과 남편, 종국에 가서는 자녀에게로 귀착이 된다.
중년 여성의 비애는 자신의 삶을 누구도 담보하지 않는다는 생의 막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를 깨닫고 더 나이를 먹어서 하는 몸부림이란, 그동안 온 정성을 쏟았던 가정을 뒤로하고,(뭐 돌 볼 것도 이제 없지만) 동창과 옛 친구들을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찾아 다닌다. 이런 만남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의 해소와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억울한 여성끼리 만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위안보다는 길고, 잦은 만남을 하고 와서 자신에게 보이는 남편과 가족의 반응을 더 즐기는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은 자유롭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구질구질한 살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단촐 해진 자신의 살림은 물론, 혼인한 자식의 살림까지 뒤치다꺼리를 한다.
요즈음 훌륭한 시어머니는 연금 받아 생활하고, 담은 김치는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놓고 가는 시어머니라는 웃기는 말이 있다.
중년은 칙칙함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완성기며 그래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다. 사람이 인생의 전반 걸쳐 이 때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없다. 아래로는 정신적, 경제적 지주와 위로는 자신이 받은 것을 공경으로 보응하며 덕을 쌓는 기간이다.
신 달자씨는 글의 마무리에서 상처받은 어머니들의 악다구니도 가족의 생채기 까지도 끌어 안고 자신의 삶도 지탱하는 큰 힘이라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는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수긍과 잠시 위안은 줄지 모르나 ‘황폐한 중년의 영혼’에 이어서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컴컴한 막장을 더듬으면서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생을 그저 그렇게 살아 가자는 것이다.
이 세상이 뭔가 특별한 이유 없이 꼬이고, 어려운 것은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울 교회 목사님의 강력하신 주장) 가정의 어려움도 마찬가지이다. 내부적인 문제를 자꾸만 밖에서 찾으려하는 어리석음이 문제의 해결은커녕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간다.
내 글을 읽는 아내는 뭔가 대단한 결론이 나올 듯 하다가는 꼬리를 감춘다고 늘 핀잔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 마치 학창시절에 요약 집을 만들어 외우고 다니듯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는 나도, 읽는 이들도 길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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