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능력 있는 여자
여자가 세상적인 능력이 뛰어나서 가정을 이끄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경제적인 면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 처서 일을 척척 잘하는 것도 말한다.
너그럽고 관용적인 품성의 여인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남자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여자만을 탓 할 순 없다.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여자이다. 이게 충족치 못 해서 욕구불만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때부터가 자신이 쌓아 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본인은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동안 행한 업적(?)을 보상 받으려는 것과 동시에 남편이 가장으로써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을 질책하는 것인데 결과는 정반대로 온다.
그동안 믿고 따를던 자녀들도 엄마가 무서워지는 것이다. 눈치를 보게 된다.
‘교만’과 ‘권력의 의지’는 타인의 영혼을 무너뜨리며, 자신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자체가 도인의 수준이다.
내 열심으로 살아 왔다는 능력 있는 여성에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여자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하나님은 남자를 여자의 머리위에 세우셨다. 여자는 그 그늘 밑에 두신 것이다. 이를 거역하여 치루는 대가는 ‘내 삶의 지옥’이다.
삶의 지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단계 별로 살펴본다.
남자는 자신에게 숙명적으로 지워진 가정의 권력자로써의 의지가 있다. 이것이 훼손당하면 언젠가는 반격을 한다.
아주 초보적인 단계는 ‘방관‘이다. 가정에서 자신은 멀찌감치 떨어져 홀로 선다.
자신의 개인 취미생활에 몰두 하거나 쓸데없이 늦은 귀가로 방관을 한다. 가족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면 마지못해서 가끔 이벤트에 동참한다. 이런 소극적인 생각을 가진 아빠가 가는 나들이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내도 아이들도 조르지 않는다.
방관은 권력자가 손상된 권력을 더 이상 다치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기가 다름이지 다음단계를 반듯이 거치게 된다. 이 때 여성들의 증상은 약한 증상의 편두통과 소화불량 등을 느낀다.
이 단계서는 몇 가지만 조치하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가 비교적 쉽다
아내가 더 몰아붙이면 남자는 적극적인 반응을 하기 시작하는데 ‘야합’을 한다.
아내를 왕따시키는 일이다. 가족 내에서 자신의 지지자를 만든다. 자녀들에게 너그러운 아빠의 케릭터로 간다. 이때부터는 가정 내 분열이 일어나며, 심각성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먼저 아내의 심성이 뒤틀어진다. 나만 집안에서 악역을 한다는 생각이 들며, 그동안 비교적 잘 유지 해왔던 자녀와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의 ‘방관의 비겁함’이 몸에 배이고 엄마의 히스테리를 늘 안고 살아간다. 장차 자신들이 가정을 이루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야합’은 능력 있던 남자들에게서도 나오는 현상이다. 사업의 실패나 실직 후에 일정기간 잠복기를 거쳐서 나온다. 여자가 남자의 벌이보다 월등하면 남자는 사회생활에서 오는 작은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한다. 여자의 능력은 남자의 면역력을 저하시킨다.
아주 교활하고 적극적인 남자는 지지자를 앞세워 ‘훼방’을 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서 잃었던 권력을 되찾으려는 행동이다. 아내의 권위에 손상을 가해서 낮추고, 자신을 올리려고 한다.
가장 손 쉬는 방법은 자녀교육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아내에게 미루고 잘 못된 것은 질책하면 된다. 아니면 자신은 자녀들에게 거룩하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분칠하거나, 자신의 방관으로 억울해 하는 엄마를 자녀에게 이해하라는 식으로 말 하면서, 간간히 용돈까지 집어주면 자녀들은 아버지를 좋아 한다. 자신의 취미도 잠시 접는다. 권력자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아내를 점점 더 이상한 인격으로 몰고 가는 짓이다.
어느 날 자녀들이 ‘착하고 고생은 하지만, 우리 집에서 문제는 엄마야!’라는 때까지 도달하게 한다. 남자의 의도대로 됐지만 이때부터 가정에 짙은 어둠이 깔린다.
이유 없이 가족끼리 소리를 지르고 다툼이 있으며, 가족 구성원간에 단절이 온다.
이때 여성들은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거나, 심한 두통과 처녀 때도 없었던 생리통을 느끼기도 한다. 밖에서 만나는 여성 중에 평상시에 늘 인상을 좋지 않게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여기에 해당 된다.
능력 있었던(과거형) 여자들은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관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비교적 좋은 대학을 나왔고, 화려했던(사실은 그렇지도 못해서 허겁지겁 결혼을 했지만) 처녀시절을 연상하면서 신세 한탄을 한다. 자녀 양육에 발목을 잡히고, 남편의 지지가 없어서 이런 처지가 됐다고 억울해 한다.
이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자녀 교육에 있어서 남다른 투지와 의지를 보인다. 자신의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다. 자녀가 따라주거나 선천적인 능력이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복합적 요인으로 여기까지 오면 우울증이 확연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 여자는 심성이 뒤틀릴 때로 뒤틀려져서 자신이 뭐가 문제이며, 상실감과 우울증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상실의 원인을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폐경이나 갱년기겠지 하면서 넘기거나 혼자 괴로워한다가 견디지 못하면 간간히 남편이나 자녀에게 화풀이도 한다.
모든 권력자가 그러 하듯이 더 이상 권좌를 지키지 못하겠다고 판단하면 국외로 도망을 간다.왕이 백성이 없으면 대우도 받을 수 없어서 자신을 지지하는 백성을 찾아서 ‘이탈’ 을 한다.
미련한 남자 중에서 이 단계에서 이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왕으로 모시는 다른 여자를 찾아서 헛짓거리를 하다 걸려서 아내도, 자녀도, 자신도 처참하게 된다. 나라의 왕이 백성을 버린 일이다. 백성을 버린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남자를 먹여 살리다 시피 한 여자들은 이를 배은망덕이라고 원통해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잃어버리거나 빼앗겼던 권력을 되찾는 쿠테타이다.
더 열 받는 일은 외모도 그 무엇도 나보다 나은 게 없는 여자와 그 짓을 하였다는 일이다.
간통죄에 걸려서 곤혹을 치루면서,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동안 간통을 한 여자에게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것은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백성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왕의 눈길이다.
이들은 사랑의 고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혼의 관념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이 있다.
가정에 거룩함에 먹칠을 하는 행위는 예수님도 이를 허락하셨다. 바로 간통이다. 더 이상 가정으로써 존재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이혼은 허락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외에도 이혼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너무도 많다. 그만큼 인간의 죄악 됨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혼은 두 사람의 결별이 아니라, 온전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데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방관하며, 먼저 가정을 깨려는 자를 가족 구성원 모두가 내치는 의식이다. 내 쫒긴 자는 하늘의 벌을 받는다. 권력자는 이를 잘 알기에 사전에 ‘야합’과 ‘훼방’을 놓는 것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남자와 결혼을 한 여자는 이를 잘 모르고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남자를 더 주장하는데 용이하겠다는 무의식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모든 남녀는 자기가 원하는 '상'이 있기 미련이다. 그동안 자신의 의식 속에서 쌓아 왔던 것이며 이를 근거로 이성을 선택한다. 그래서 억울해 하거나 속았다는 것은 속절없는 생각이다.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은 자신의 선택이다. 핑계 댈 곳이 없어서 더 억울하고 분함이다.
여자 연애인 중에서 남자의 이상향을 묻는 질문에 “나를 이해하고 편하게 해주는 남자”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계산이 깔려있다. 남자를 자신의 머리위에 두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의 완곡한 표현이다. 그렇게 말하는 여자는 혼인 후에 그따위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한 결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인기 절정의 여자 연애인의 흔한 이혼은 이런 측면이 많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다.’
남자의 능력은 힘이나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의식이 앞섬’이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있을 남자를 찾아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행복하기 어렵다.
남자는 의식만 앞섬이 아니라 너그러워야 한다. 그래서 사랑이란?
‘사랑하는 상대를 온전히 사랑 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끌어 올리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다.'
여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
성격이 적극적인 성향의 여성에게 나오는 우울증은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케이스이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주문도 잘 걸고 주문대로 행동도 잘 한다.
자만심으로 가득했던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여성은 혼자 있을 때는 몹시 괴로워 하다가 타인과 같이 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이런 강한 성격은 좀처럼 남에게 자기 마음을 털어 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의시기를 놓치게 된다.
내 열심으로 모든 일이 될 것이라는 망상을 지우고, 그동안 얻은 것도 자신의 열심이 아니라 허락된 환경이 이루었다는 감사한 마음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억울함이 해소되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고, 이로 인해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말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 이를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엄청 두들겨 맞고 나서 깨우치기도 한다. 그 때는 자기 손에 쥐여 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힘도 없어서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나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도무지 내 머리 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남편이 문제라고 하며 도리깨를 친다. 자기를 낮추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사람의 인격이나 실력이 스스로 낮춘다고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낮추어서 남편을 올리면 손해 일까? 기고만장 해 질까봐!
그러면 그만 두길 바란다. 워낙에 머리위에 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겸손을 요구받는 대상은 능력이 더 주어진 사람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낮아 질 것이고, 낮추면 오를 것이라고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바보 온달을 사랑한 평강공주는 사랑의 진정함을 알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상대를 온전히 사랑 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끌어 올리려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 하시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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