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한 남자 콤플렉스
-우리사회는 원시시대의의 양육강식의 시대도 아니거늘, 그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만일 원시사회가 계속 이어져 왔다면, 그 안에 또 우열은 있겠지만, 약한 남자는 완전히 도태되어서 살아남은 남자는 모두 강한 남자만 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으셨다. 자기를 패는데 힘을 썼던 남편을 보고도, 자기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 한다면 이를 뭐라고 말해야 하나?
강하지 못하여 집안에서 질책 받고 사회에서 숨죽여 지내던 남자는 결혼을 하면 아내를 패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강하지 못한 남자는 스스로 우울하다.
더구나 ‘하면 된다.’ 는 무식한 말은 이들의 기를 더욱 죽이고,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열심을 내어서 효과를 보는 때는 어려서 부모 밑에 있을 때이다.
그다음은 사회적인 흐름과 관계성이 성공의 여부를 좌우한다. 이도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했는데 성공했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사업이 망한 사람들이 어디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인가?
있는 것을 억압하고, 없는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려 말고 이 세상의 아들들을 있는 그대로 키우자.
내가 아는 남성 중에 진정 강한 남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 탈을 쓰고 있었습니다.
6.사회, 연령적 정체기에 있는 중년 남성의 대책
조선말기 평균 수명은 남자 50살 여자 55살이었고, 통계 신뢰를 할 수 없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그리고 비정상적인 50~60년대를 넘어서 1970년대 한국인 평균 수명은 남자 59살 여자 60살 이었다.
요즈음 시골 노인정에는 칠순 아래의 노인은 물 당번을 한다고 하는데 불과 50년 전에는 마흔 살이 넘으면 농사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오늘날 중년은 고달프다.
사회의 급격한 변혁과 왜곡된 사상 속에서 이만큼 버틴 것이 기특할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정신병력과 노숙자는 서구나 일본에 비하면 엄청 작은 숫자이다.
우리의 급하고 극단적인 성격이 말 해주듯이 자살은 엄청 많다.
앞서 말 했지만 먹고사는 것이 절대 가치였을 때는 살림이 점점 나아지면 그 힘으로 버티지만 이제는 그 힘을 다 한 것 같다.
내 또래에 별미로 먹는 수제비나 보리밥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사람도 있다. 어렸을 적에 얼마나 한이 맺히고 죽도록 지겨웠으면 입에 대지도 않을까?
충청도 내륙이 고향인 친구는 얼마 전까지 생선이라고는 짜디짠 고등어자반이 최고 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단군이례 이렇게 잘 먹고 잘 산 적이 없는 오늘날에 더 이상 어떻게 잘 살려고, 이 아우성을 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이미 넘은 것 같다. 자신의 어린시절도 돌아보지 못하는 집단에게 역사의 교훈이 먹혀들어 갈 리가 없다. 더구나 2000년 전의 예수 이야기는 그야말로 귀신 씨 나라 까먹는 소리다.
우리가 퍼먹은 바닷물은 이제 멈출 수 없는 갈증 상태로 와있다.
그래서 도박장 ‘바다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 것 같다.
다람쥐가 체 바퀴를 돌고 내려오면 느끼는 어지럼증을 느껴 또 이내 체 바퀴에 오른 것과 우리의 삶은 전혀 상관이 없을까?
힘이 있어서 농사를 많이 지를 때와 늙어서 힘이 떨어지면 감당 할 만큼만 지어야하듯이 직장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계속 벌이가 좋아야 한다고 사업을 하다가 폭삭 망해 먹은 가장이 얼마나 많은가?
있는 돈을 적당히 쓰면서, 기회를 보거나, 아니면 눈높이를 낮추어 일을 찾았다면 그런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잘나가려 하거나, 더 잘나가려 하다가 당하는 것이다. 그들의 억울함은 하늘을 찌른다. 왜냐하면 내 열심을 냈는데도 도리어 까먹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하지만 그들도 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괴로움을 이겨 낸 후 의식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의식을 끊임없이 올려주시는 목사님은 이를 ‘두들겨 맞고 간다.’ 로 표현하신다. 어렵고 힘든 방법으로 깨우친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은혜는 내열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을 살피고, 관계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불혹의 나이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그동안 살아 온 얄팍한 지식으로 욕심과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살펴서 실수를 최대한 줄인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먼저 ‘줄여가는 지혜’를 익혀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줄이면 망했다.’
라고 한다. 정말 망해봐야 줄이는 것이 뭔지 안다.
나이를 먹어도 계속 잘 벌어먹겠다는 것은 큰 틀에서 보면 자기보다 젊은이를 억압하겠다는 의지이다. 부동산 투기가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집을 몇 채씩 소유하고, 집 없는 자를 억압하는 짓이다.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하면 이미 죄의식이란 물 건너 간 것이다.
요즈음 진보와 보수는 분배와 확대생산을 두고 싸우고 있다. 더 잘 먹고 사는 사람들이 확대생산을 부르짖고 있다. 파이를 더 키워야 없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이다. 서구유럽이 복지를 줄여 간다는 예를 들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언제 우리에게 복지가 있었는가?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이상한 사회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들이다.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근검 한 생활을 요구받는다. 그렇다고 금욕주의자들은 아니다. 지혜롭게 이 세상에 내 놓을 것은 내 놓으며, 되돌려 받지 못할,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었었던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하신다.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찾아 온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는 말씀에 큰 은혜가 있다. 큰 상을 떡 벌어지게 차려 놓고, 너도 같이 먹으라는 말씀이다. 막말로 말하면 혼자 숨어서 좋은 것 처먹지 말라는 뜻이다.
나그네는 지나쳐 가는 사람이지, 다시 나를 찾는 사람이 아니다.
7.여성들은 남편의 우울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를 해야 하나
강한 남자는 밖에 일을 아내에게 하지 말아야한다. 몸이 아파도 죽을 지경이 아니라면 혼자 병원에 가거나 삭여야 한다. 가족들 앞에서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죽음이다. 견디기 힘들면 술을 마시고 이를 숨겨야한다. 그리고 껄껄 웃어야 한다.
세상에 이런 억압이 어디 있는가?
스스로 정신병자를 만드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이런 남자는 투철한 책임감이라도 있다. 부서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난다. 그 외에 남자들은 논외로 한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물건으로 비교 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고급자동차도 40년을 타고 다니기 힘들다. 하물며 나약한 육체의 인간이 이 나이가 되면 당연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중년의 나이는 영혼의 치유를 받아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교회를 사십이 넘어서 나가게 됐는데, 몇 칠 후에 예배시간에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와 아들보기에도 창피해서 얼른 눈물을 감추기는 했지만 도무지 눈물이 나온 이유를 몰랐다. 눈물을 짜내는 싸구려 부흥설교도 아니고, 가사도 제대로 모르는 복음 성가에 가슴이 복받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나의 영혼에 관하여 무심하게 잊고 살아 온 것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이런 면에서는(정신적) 여성들이 강 할 수도 있다. 남편은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중요한다.
더 이상 강 할 필요가 없다고... 그동안 열심히 잘 해왔다고... 이제는 같이 고민을 하자고... 뭘 해서라도 산 입에 풀칠을 못하겠냐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한다.
아래와 같은 의식을 갖기를 권한다.
1. 남편은 어린아이가 아니며 최고의 권력자이다-
2. 남편은 내 삶의 주관자가 아니라 좋은 교사이다-
3. 중년의 남편은 아내의 도움이 절실하다-
4. 가정은 남편만의 쉼터가 아니다-
5. 태생의 억울함은 나이 40 전에 끝을 내야-
6. 줄여가는 것이 지혜다-
7. 중년은 영적인 치유를 받아야 하는 시기이다-
8. 부부는 ‘같은 나라’라는 인식 갖기-
9. 자녀를 교육 시키는 목적은 완전한 독립심을 키우기 위함이다-
10. 내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이며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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