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구제(救濟)에 관한 단상

두 아들 아빠 2006. 11. 9. 15:10

구제란 무엇인가?

 

구제(救濟)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줌' 또는 '남을 어려움에서 건저 내다' 입니다.

이에 관한 오해와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실질적인 도움의 중요성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전에 깊게 살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대는 단기적인 것이 있고, 장기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가령 지하철 계단에서 웅크리고 적선을 바라는 거지에게 돈을 주는 일는 진정한 도움이 아니라 그저 단기적인 동냥입니다.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해서 편해지고자 깡통에 동전 몇 닢을 던져 넣는 행위일 뿐입니다.

이에 반하여 야학을 열어서 못 배운 자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행위는 아주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구제 방법입니다. 이런 사업에 단 돈 몇 푼이라도 지원하면 이에 동참하는 아주 훌륭한 구제 행위가 됩니다.

 

어려운 친인척을 도와주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이 돈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삶의 방식이나 정신이 부족한 것인지를 살펴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도와주면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은 오로지 돈이라는 생각만 고착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하여 억울함과, 거지 근성만을 키울 뿐입니다.

도움을 주고도 상대에게 별로 고마워하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경우가 도움을 받는 자가 자신이 다만 돈이 없어서 라는 억울함만 있어 그런 것입니다.

 

잘못된 구제

 

개인적으로 벌이도 괜찮은 시절에 어려운 친인척을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무조건 도왔죠. 그 사람이 왜 어려운 삶에 빠졌는지,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정말 무엇인지 살피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좀 넉넉해지면 모든 일이 풀릴 것이라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이게 크게 잘못된다는 것을 미련하게도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사람이 좀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했지요.

 

저 자신이 그와 다른 점이라면 돈과 지위만 있었다는 사실을 요즈음에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늘 억울함이 있었지요. 자기가 보아도 별것이 아닌데 운이 좋아서 그렇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물론 내 앞에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 내 차보다 동급 이상을 뽑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당시에 그분과 나는 의식이 같았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나는 억울함이 덜 했고, 그분은 많았다는 것뿐입니다. 그런 의식에서 구제는 잘못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구제가 왜 어려운가?

 

사람들은 현재보다 더 많은 재산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삶이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 자기 실력에 맞는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돈도 그에 걸 맞는 실력이 되는 자가 지녀야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은 부자 중에 실력을 갖춘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부동산과 금융실명제가 되었을 때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재산이 두 살, 세 살 먹은 직계 자식이나 손자에게는 명의가 되어있어도 형제, 자매에게는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 형제, 자매도 함께 나누지 못할 재산을 어찌 남과 나누겠냐는 것이지요. 부자가 천국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남과 나누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돌아야 할 돈을 혼자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계속해서 찍어 내는 이유는 이들이 움켜준 돈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구제행위를 따로 하지 않아도 찍어 낸 돈만 정상적으로 돌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투기는 돈의 흐름을 막는 가장 죄악된 짓입니다.

구제와 선행을 하기 전에 이런 큰 죄를 짓는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구제와 교회

 

(다른 종교는 잘 모르기에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부자들이 비교적 돈을 많이 내는 곳은 종교단체입니다. 부자들은 결코 돈을 쓸데없는 곳에 쓰지 않습니다. 돈을 내고 더 많은 복을 비는 것이지요. 이는 역능기능만 아니라 그나마 돈이 돌았다는 순기능도 인정을 해야 합니다. 다만 일주일에 몇 번 사용하지 않은 엄청난 규모의 교회 건물이 문제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지요.

 

오늘날 교회는 부자에게 적당한 직분을 주어서 권위를 언져 줍니다.

복도 빌고,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권위도 얻고, 일석이조 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려온 기독교 몇 대 집안이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엇 그제 나온 초신자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도무지 하나님나라의 사람으로서 실력이 쌓여있지 않은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돈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돈과 힘이 떨어지면 교회를 나오지 않거나 다른 교회로 옮깁니다. 이런 분들이 새로 들어 온 교회는 어려운 일이 많이 생깁니다.

 

예수께서는 불우한 이웃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는 과부된 자는 그 친인척이 먼저 돕고, 그렇지 못 한 부득이한 경우에는 교회가 도와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을 잘 살펴보면, 교회가 결코 구제기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니라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교회가 구제 사업에 너무 박하다고 욕을 먹어서 구제에 온 힘을 쏟는 교회가 칭송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교회에서는 남을 도왔다는 자부심만있지 영혼의 구제는 받기 어렵습니다.

구제 사업은 적십자 같은 전문기관 해야 더 효율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구제하는 곳입니다. 영혼을 구원받은 자가 세상의 구제에 힘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구제에 힘을 쓰기 보다는 성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성도의 영혼을 구원하는 실증을 보이지 못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