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선택'과 '내 열심'에 관한 단상(斷想)

두 아들 아빠 2006. 10. 7. 08:37

'선택'

 

사람은 끊임없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직장인의 경우 아침에 자명종시계를 들으며 당장 일어날까, 아니면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가 일어날까? 부터 시작해서 점심에 뭘 먹을까? 퇴근을 일찍 할까? 아니면 느긋하게 좀 더 일을 할까? 등등 하루에도 수 십 번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일상의 선택은 줄어드는 것 같다.

 

그저 조건반사나 자동적으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주변에서 나의 습성을 알기 때문에  선택에 고민이 되는 판단을 요구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습관이 고착화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반면에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자주는 아니지만 고도한 판단력을 동반한 선택을 요구하게 된다.

어릴 적에는 누구와 무슨 놀이를 해야 할까? 학생 때는 자신의 진로에 관한 선택과 그 후 배우자에 관한 선택, 그리고 직장과 사업에서는 자신과 주변은 물론 미래까지 예측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선택의 압박은 어느 세대나 동일하다. 다만 세월이 지나야 과거의 선택은 유치한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게 된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하는 중요한 선택은 대부분 누구와 함께 할 수 없어서 외롭고 어렵다. 다만 선택이 잘못되어도 고통을 같이 나누고 지지 해줄 사람이 있다면 천만 다행이다.

 돈과 지위에만 가치 기준을 두고 있는 한 줄로 가는 양떼 같은 현대인에게 과연 진정한 '선택'이란 있을 수 있을까? 

 '내 열심'

 내 열심을 내는 경우는 자신의 힘과 의지를 믿고, 그런 행위 끝이 이 사회에 통한다고 확신을 해야 한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열심이 비교적 잘 통한다.

내 열심이 가장 잘 통하는 시기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시절에는 이를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성공을 위해서 자신과 주변을 살피지 않고, 무리한 노력과 열심을 내서 간혹 자신이 원하는 시회적인 지위를 쟁취하고, 그에 걸 맞는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 남의 보이지 않은 도움이나, 착취하여 얻은 성공이 아닌 가 진정으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자신의 열심도 주변의 지지 없이는 별 소용이 없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아,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과 그렇지 못한 경우가 엇갈리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성공한 경우는 자신의 탁월한 선택과 열심을 내세우고, 반대의 경우는 운이 없거나, 주변의 지지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기 쉽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면 내 열심과 관계없는 좋거나 ,좋지 않은 상황도 얼마든지 있었다. 극단적인 예 이지만 한번쯤 죽을 뻔한 일이 있었던 사람은 이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의 보살핌과 학교의 보호를 지나서 사회에 진출하면 개인은 또 다른 사회적 보호 기관에 머물게 된다. 조직의 변화는 자기 열심과는 전혀 관계없는 상황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한 개인이 사회적인 큰 흐름이나 급변하는 변화에 대하여 대처하는 일은 더딜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사회적 변화에 무딘 학교나 공무원이 호평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선택과 내 열심'이 적중한 사람은 자신의 공로를 남에게  전위 시키려는 의식이 필요하다. 되갚음이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이 끼치는 곳에 공의로움으로 다스리고, 열심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진정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사회적인 도전과 변화를 요구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