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

두 아들 아빠 2006. 11. 2. 14:26

가시고기 책 이야기

 

수년전에 공전의 히트를 친 아버지의 희생적인 사랑을 담은 책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 책에 관하여 온전히 비평을 가한 사람이 전혀 없음에 놀라웠다. 큰 조카의 책장에 아직도 있으며, 연극으로도 나와서 아내와 큰 아들이 보고 눈물바다를 이룬 적이 있는데 당시에 나는 그저 감동적인 소설이거니 하고 그냥 지나쳤다. 문학적인 것은 차제이 치더러도,

 

먼저 인간관계를 한낱 물고기의 습성에 비유한 점이 문제이다. 이는 인간이 숭고하게 지어진 자신들을 동물도 아닌 물고기에 비유한 것으로 감동을 자아 내려고 했지만, 원죄가 있는 인간 타락의 증거일 뿐이다.

 

당시 IMF 시대를 겪으면서 깨어진 가정이 많아, 이혼 가정을 소재로 썼는지 몰라도,

이혼한 가정안에서 억지 사랑을 만들려는 의도는 올바르지 않다. 이혼은 아이에게 부모의 죽음보다도 더 가혹한 일이다. 부모의 죽음은 상실감뿐이다. 그러나 이혼은 배신감이다. 부모에게 배신당한 자녀에게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죽기를 각오하고 이혼을 하는 사람은 말리지 않는다. 그 외는 다 자신들의 정욕을 위해서 하는 짓이다. 가정을 버린 아이 엄마가 프랑스로 가는 설정은 마치 소공자를 연상하게 한다. 그렇다고 부모가 다시 합치는 해피앤딩도 없다.

이 책이 정말 좋지 못한 점은 아내를, 엄마를 철저히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성적인 사랑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감성적인 사랑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어머니의 사랑을 아버지에게 덮어씌운 변질된 가족 사랑이야기이다.

장기이식과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감성을 무너트리는 데는 효과적인지는 몰라도 교육적이지 못하다.

어머니의 사랑이 '무조건적'이고, '감성'과 '인정머리 있음'의 사랑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이성'과 '경우바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을 자아낸다며, 이성은 지워버리고 감성과 감정만 난무하는 이 세태는 우리의 과거가 정의롭지 못했고 '의'가 바로서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거 우리들의 아버지 상

 

기독교 신자 중에서 기도를 할 때 "하나님 아버지~" 하면 그 '아버지'라는 단락에서 기도가 잘 이루어지 않는다는 성도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육신의 아버지가 공의롭고, 사랑이 넘쳤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넘어 갈 것인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와 반대이기 때문이리라.

 

일제시절을 거치면서 왜곡된 유교의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를 이어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절대 권력자로 살아 왔다. 사회 전체가 그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탓 하거나, 잘못을 권면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오늘날 세상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때가 '야만의 시절'이었다.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 조차에게도 관용적인 태도가 용납되지 못하여 악으로, 깡으로 살아와 가정에서도 너그러운 아버지 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병영사회 같은 군사독재 시절에 권위주의는 '절대 선'이었다. 이를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효'라는 것을 끼워 넣었다. 그래서 '효'라는 사다리를 끝까지 오르니 '충' 이라는 놈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권위주의는 우리사회에서 엄청 부흥한 교회마저도 이를 타파하지 못했다. 오히려 공고히 하였다.

이를 예수가 공자를 이기지 못했다고들 하는데, 잘못된 말이다.

공자는 인(仁)을 앞세워 사랑을 말했다. 문제는 공자의 예(禮)를 곡해 한 것이다. '예'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다. 오늘날 '예'의 정신은 다 빠져나가고 형식만 남았다.

그 남은 찌꺼기가 제사이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적극적인 권위주의자와 방관적인 권위주의자로 나누어 있었다. 그 사이를 편의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이상한 아버지도 있었다.

자기 아버지가 어디에 속했는지는 각자가 알 일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

 

올바른 아버지 상에 관하여 대 혼란을 겪고 있는 요즈음 아버지 개인이 각개 격파 식으로 나가고 있다. 혼인과 가정의 참 의미를 모르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이벤트나 하고 넘어가고... 약발이 떨어지면 또 난리를 피우고...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차라리 애를 낳지나 말던지...

 

혼인은 두 사람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은 '사람이 사람을 남긴다.'는 의미가 첫 번째이다.

이 두 가지 의미라도 확실히 인식 한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허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집안에 인테리어가 가정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권능의 실력자'이지  권력자가 아니다.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행복을 최고로 누리는 자이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오만함만 내려놓아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내 자식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을 가지면 그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부담감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아내가 나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행하면, 그 앞에서 어쭙지않은 권력자 행세를 하지 않아서 좋다. 남자는 선천적으로 여자보다 심리가 불안한 존재이다. 늘 외부의 적을 경계하고, 싸워야 할 강박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안정성은 아내와 같이 있을 때 찾아야 한다. 아내를 한 몸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마음의 불안과 지옥은 영원하다.

 

아버지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감정을 감성으로 덮어버리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면서 눈물만 흘리는 또 다른 어린 아버지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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