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필(feel)이 꽂힌다. 과연 써야 할 말인가?

두 아들 아빠 2006. 12. 9. 05:02

감성(감정)이 판을 치는 세상


언제부터인가 ‘필(feel)이 꽂힌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 말을 여성들이 더 많이 쓰고 있다. feel이란 느낌으로 감지하다이다. feeling은 feel의 동명사로 감정(感情)이다.


웃기는 이야기로 오리온제과에서 초코파이를 러시아와 중국에 엄청나게 수출을 하면서 情을 같이 끼워 팔아서 대한민국에 이젠 情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feel을 수입 해왔다고 한다.


‘필(feel)이 꽂힌다.’는‘느낌이 가슴에 와 닺는다.’라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애인을, 배우자를 구해도 필(feel)이 꽂혀야 한다. 사람을 감성으로만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인격은 지(智), 정(情), 의(意)가 균형감 있게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는 정(情)이 너무 앞서고 있다.


이혼율이 많은 이유의 하나로 배우자를 이성적인 판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 우리 사회가 감정을 앞세우는 사회가 되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필요 없는 물건도 꼭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여 팔아먹으려면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를 해야 한다. 집안을 둘러보면 별로 쓸모도 없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다 흉폭 하게 되는 이유는 감정이 앞서는 사회에 푹 빠져 살다보니 아주 예민한 상황에서 감정의 절제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도무지 큰 소리를 치고 싸울 일이 아닌데도 멱살잡이를 흔히 하는 이유도 그렇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과거 우리 근대 역사에서 정의가 우뚝 서 보기는커녕 정의를 거스른 불의한 자들이 이 세상을 계속 주름잡았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나라와 이웃을 팔아먹은 자들과 함께 숨을 쉴 수 없는 일이다. 총칼로 정권을 잡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없이 한 자들과 한 하늘 아래서 살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모두와 함께 살고 있다. 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식까지라도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사회의 너그러움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악에 대한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굴욕이다. 그래서 감성을 더 앞세우는 사회가 되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계속 유지하려면 감정과 감성을 더 증폭 시켜야 한다. 그래서 조중동이 열심이 나발을 불고 있는 것이다.

‘필(feel)이 꽂힌다.’는 음악이나 그림 등 예술작품에나 쓰면 모를까, 사람을 판단 할 때는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의지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