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언어의 생성 그 무개념과 파렴치!

두 아들 아빠 2006. 10. 19. 13:21

언어의 생성은 그 시대와 집단의 의식을 담아낸다. 언어는 사상이며 의식이다. 

각자의 입장을 대변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넘치면 사실을 왜곡하기 일 수이다. 의도적인 것도 있고, 내면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나 온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올려 본다.

 

개화기는 일본과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시점을 지칭한다.  문학, 사상, 정치 등등 우리나라 근대사를 가르는데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언어이다.

 

開花期는 국어사전에 '사람들의 지식이 깨어 문화가 진보 됨.' 과 그 시기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 500년은 지식도, 문화도 없거나, 낙후 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의 과거를 완전히 허접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개화기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5천년의 유구하고, 찬란한 민족유산' 이라는 말은 왜 쓰는가?

개화기는 일제 침략의 당위성을 은근히 대변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골수 친일파들이 생성한 말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통용되는 한, 일제가 우리에게 근대화를 시켜준 고마움도 있다고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일제의 말이 끈질기게 계속 쓰여지게 된 이유는 해방 이후에도 나라와 사회의 주류세력이 친일파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역사의 왜곡 또한 친일 역사학자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다. 현 서울대 총장 이장무의 조부인 이병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모든 신문들은 불온 분자에 의한 '광주 난동' 이라고 했다. 그 후 '광주 사태'라고 하다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서 같은 사건의 명칭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관점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쓴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사실에 근거 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 대우의 멸망을 예측 할 수 있다. 대우는 군사정권과 야합하여 수많은 알짜 부도 기업을 인수하는 특혜를 누렸다. 그러나 삼성, 현대와 내수 경쟁에서 늘 뒤쳐진 대우는 무대를 해외로 돌렸다. 아마도 이런 시점에서 쓴 글이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해외로 뻗어가려던 아까운 기업을 망쳤다고 하면서 음모론까지 나왔다.

대우는 해외에서 우리 기업과 덤핑 경쟁을 해서 큰 괴로움을 주던 기업이었다. 

내수에서 밀린 기업이 해외에서 성공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경제 선진국에서 나온 진리이다.

 

'많은 할 일'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할 일을 찾지 못했거나,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해서 망했다.

김우중은 IMF의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기실 IMF사태의 주연급이었다.

 

그가 죽기 전에 진정으로 참회를 하려면 아래 제목으로 자사전을 쓰길 권한다.

'야합은 길었으나 멸망은 한순간이었다.'

 

현대의 고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인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인간의 오만 방자함이 제목에서 여지없이 들어난다. 이런 의식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된 것같다.대선 실패로 현대는 김영삼정부 때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가 다행이도 국민의 정부와 화끈한 화해로 기사회생 했다. 북한을 돕는데 앞장 선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는 남북 경협의 물꼬는 튼 역사의 큰 농사꾼이며, 이로 인하여 자식을 제물로 삼았지만 자신은 정녕 실패를 모르고 간 사람이다.

 

삼성의 고 이병쳘회장의 자서전인 '우리가 잘사는 길' 은 위 두 회장보다는 차라리 낫다.

다만 ' 잘'이라는 모호성이 문제이다.

그는 빈곤 탈출이 잘 사는 길의 목표이며 외자유치를 하여 공업화를 일으키고, 경제발전의 고전적 코스를 밟아 내려올 시간이 없다며, 대기업을 먼저 키우고 중소기업으로 내려가자고 박정희를 설득하는데 성공 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왜곡되고 꼬인 원인의 원조이다.

우리나라가 그가 말하는 빈곤에서 탈출을 했지만 과연 우리가 잘살고 있는가?

삼성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의 금쪽같은 손녀가 멀리 타국에서 자살을 한 것을 보면 그리 잘살고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중에 11계명인 '사원을 일류로 대접하라' 라는 말 뒤에 '사원을 최고로 부려먹어라'는 말을 인식하고 삼성에 입사한 젊은이가 얼마나 될까?

이병철의 '사업규모의 경제성을 파악하는 원칙'에도 잘 들어 난다. '확보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및 적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사람을 최고로 부려먹기 위한 기본 자료다.

회사에서 진이 쪽 빠진 인간은 결코 잘 살수 없다.

 

이들의 책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자체가 무리이다. 그들은 거짓말을 일삼는 장사꾼 일뿐이다.

 

I.M.F 사태는 국가의 금융 주권을 빼앗긴, 나라를 팔아먹은 초유의 사태이다.

가정에 비유한다면 월급 내역서, 통장, 카드, 가계부 등등 가정의 모든 금전에 관한 것을 남에게 넘기고 사용 내역을 일일이 검사 받는 것이다. 주부가 시장에 가기 전에 검사자에게 살 물건과 가격을 보고하며, 장에 다녀와서는 장바구니를 일일이 검사 받는 사태이다.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오래 전에 아내에게 가계부 좀 보자고 했다가 엄청나게 면박을 받은 후로는 입도 뻥끗 못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가계부는 쓰지도 않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가계부를 보여 달란 내가 바보였다.

 

자본주의 강대국 물건을 만들어서 이윤을 창출하는데 역부족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약소국을 상대로 약탈 해온 거대 자본을 앞세워 남의 나라 국부를 털고 있다.

동남아의  IMF사태는 강대국의 자본 약탈이었다.

우리나라의 증시에 엄청난 외국 자본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자국의 고급정보를 이용하여 우리 증시에서 돈을 거두어 가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도 사전에 아는 듯 자본의 이동이 빠르게 치고 빠진다. 참여정부는 이를 면밀히 주목하고, 대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외환위기' 는 이 사태의 주역들이 별일 아닌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만든 말 이다.

'위기'는 항시 있는 일이다. 엄청난 국가적 사태를 이보다 더 약하게 표현 할 방법은 없다.

당시 정부, 언론, 재계, 학계, 종교계 등 모두가 한 통속이었다. 그래서 책임자를 색출하라는 자도 없었고, 따라서 책임을 진 사람이 단 사람도 없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물귀신 작전에 고수들이다. 수많은 친일파가 온전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한 자들이다.

 

국민들이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의 두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아서 두 번씩이나 물을 먹인 것이 아니라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연거푸 물은 것이다.

험 집이 있는 자를 계속 후보로 내 놓은 한나라당도 한심하지만, 이를 한치의 동정심도 주지 않은 국민들의 진정한 승리였다.

악의 세력이 번성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지 않았듯이 한나라당의 악행과 한심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이 땅에서 대통령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역사의 균형감은 하늘의 뜻이다.

 

햇빛정책은 국민의 정부가 만든 공식적인 정책 용어이다.

이 말은 수해를 받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다. 남한의 햇빛이 암흑의 북한을 비춘다는 뜻이다.

햇볓정책은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용어 선택의 실패이다.

이보다는 '한민족 교류 정책'이라면 어떻까?

'나라를 팔아먹은 짓'을 '외환위기'라고 한 사람에게 조언을 얻고 싶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언어 마술사 이자 파렴치한 인간이다.

 

포용정책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참여정부 들어서 생성한 용어다.

지금은 여, 여와 언론 모두가 사용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포용'이라는 정책은 정상적인 용어는 아니다. 상대방의 모두를 담아낸다는 뜻이다. 잘못까지도 말이다. 그동안 북한의 잘못을 얼마나 담아냈다고 포용정책이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언론들은 북한의 핵 실험으로 포용정책이 실패 했다고 떠들고 있다. 자기들은 지지도 하지 않은 정책이었고.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포용이라는 말을 수긍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게 식량과 돈을 퍼준 것이 진정한 포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햇볓 정책은 노태우정권 때 만든 남북경협법이 근간이다. 이 법은 한나라당이 집권 했을 때 정부가 발의하고 국회를 통과하여 생긴 법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기들이 이를 욕하고 있다.

 

남이 만든 말이라고 아무렇게 사용하면, 자신의 잘못은 물론, 무개념을 드러내고 정체성까지 문제가 된다. 생성되고 통영되는 말! 그저 의식 없이 따라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마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