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386세대는 시대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두 아들 아빠 2006. 12. 20. 22:34
 세대의 구분

 

전통적인 서구 선진국은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본주의를 구축 했지만, 한국은 불과 50년 안에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세대차이가 한국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과대평가와 행운의 386세대 그러나 늘 불안한 386

 

독재정권하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성인이 되어서 그들에게 돌을 던지며 저항하여 독재와 아버지세대를 단번에 극복한 자존심 충만한 세대였다.


독재정권과 싸우며 얻은 유익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이 대학에 다닐 때 학교와 교수들은 학생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학생들 사이에 ‘어용’이라고 낙인찍히면 그 누구라도 목을 움 추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졸업정원제로 많은 학생이 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을 못한 학생은 없었다.


사회의 진출도 그 어느 세대보다도 수월 했다. 전공과 관계없이 취직이 되었고 요즈음 최고로 선호하는 공무원과 교사직을 우습게보던 세대였다. 현재까지 현업에 종사하는 386세대의 50% 이상은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시험 때만 공부를 하였고, 영어를 조금만 잘하면 우대를 받았다. 자기 윗세대가 완전한 컴맹세대라서 컴퓨터를 몰라도 되는 배짱을 지니고 있었다. 386은 실력 면에서 분명 과대평과와 이에 따른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386세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컴퓨터 시대의 선두 주자를 자처하며, 마이카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멀쩡한 승용차와 핸드폰을 최소한 서너 대는 갈아 치웠다. 돈 갈증을 제일 많이 느끼는 세대이다.


386세대는 한국의 선진 자본주의의 정상에서 실과를 따먹은 세대이다. 단군 이래 사람값이 최고인 시대를 살았고, 많은 부를 누려왔지만, 이들은 늘 불안하다.

자녀교육과 노후에 대한 불안 외에 그동안 누려왔던 부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이런 불안감의 극단적인 예가 ‘기러기 아빠’들이다.


자신이 그동안 쌓아 온 부를 아낌없이 투자하여 자기자식만 우리사회의 주류층으로 올려놓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한 마디로 ‘몰빵 정신’이다. 그 안에 자녀나 본인이나 이웃에 대한 온전한 영혼과 배려는 없다.


기러기 부모 중에는 살아오면서 영어만 됐다면 하는 식의 ‘영어숭배주의’자 들이 있다 조기위학을 다녀 온 자신의 자녀가 인성이 뒤틀려지지 않거나 토종 또래에게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다. 어느 정도는 각오했으리라 믿는다.


욕심을 내다 망해먹기 전에, 가진 것에 만족하며, 줄여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386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근검절약을 다음세대에 전수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이다.


 

야누스 386의 선택

 

독재를 종식시킨 이유는 정권의 연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악습이 더 큰 문제였다. 권위주의, 패거리문화, 관행적인 뇌물문화, 의와 불의가 구분 조차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 사회는 조직폭력배와 별다른 구분이 없었다. 다만 합법과 불법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굴지의 기업이 된 삼성이 임원들을 시켜서 미국에서 불법을 저질러 벌금을 선고 받거나, 감옥에 들어가고, 회사는 그 가족과 뒤를 봐주는 일은, 조폭의 세계와 전혀 다름이 없다.


386세대는 불의한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주의 쟁취 했지만, 이 집단의 대다수는 현실의 불의와 타협을 하는 삶을 살아 왔다. 의식을 선도한 집단은 현재 권력의 핵심에 있고, 대다수의 다른 집단은 앞 세대의 악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의식이 앞서있던 집단으로 인해서 사회가 변하여 대다수의 386세대는 마치 두목 잃은 조폭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일부는 한나라당의 문고리를 붙잡고 있다. 망각도 정도가 심하면 정신질환에 해당 된다.


개혁은 원하지만 자신의 삶은 유지,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다수의 386세대는 이제 회피 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우선 생활면에서 줄여가는 지혜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들의 삶을 보장 할 수 없다. 경제의 파이를 계속 키워 가아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바닷물을 계속 퍼 마시고 있는 정신병 증세가 깊은 환자들이다.


사회적으로는 정의 실현을 해야 한다. 선두까지는 아니더라도 참여정부가 열어 논 청렴함에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따라야 한다. 이젠 과거의 음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젊은 시절 서슬 퍼런 독재를 극복한 세대인 만큼, 이제는 원숙한 나이에 걸맞게 권위주의와 여성 억압을 가정과 사회에서 단호히 추방해야 한다. 젊은 시절의 저항정신이 외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적인 자기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중년의 원숙한 인격으로 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온전한 길이다.


 

386세대가 역사 앞에서 고백을 해야 할 것들

 

8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있었더라도 386세대 같은 행동을 했었을 일이다.

다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의 386세대가 그 중심에 서 있었고, 마땅히 할일을 한 것뿐이다. 그래서 이를 내세우고 자랑 할 일이 아니다. 충분한 보상도 받았기 때문이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음세대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우선 2006년도에 있었던 광기에 가까운 부동산 문제에 관하여 다음세대에게 설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때는 다 미처 있었다.’는 따위로 얼버무리면 안 된다. 그 때 자신의 행적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친일파가 역사 앞에 두고두고 욕을 먹는 일은 저질은 죄상보다 자신의 잘못을 다 밝히지 않아서이다.


다음으로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몰빵에 가까운 표를 던진 이유를 대야 한다. 그 당시 신문만 읽어서 그랬다며 언론의 책임으로 전부 돌리면, 나이가 사십이 아니라, 실은 어린아이였다고 고백을 하면 된다. 애가 애를 키워서 네가 이 모양이 됐다고 장성한 자녀에게 고개 숙여 말해야 한다.


 

386세대여! 자존심을 찾자

 

‘자존심이 밥을 먹여 주냐’고 말하면 안 되는 세대가 386세대이다.

자신들의 자존심과는 관계없이 역사는 386세대에게 특혜에 가까운 은혜를 부어주었다.

이제는 받은 은혜를 온전히 되돌려 주어야 할 때이다.


불의와 타협하여 유익을 얻으면 그 이상의 자존심을 내려놔야 했다. 마치 조폭의 행동대장이 부하들 앞에서는 호령을 하지만 보스 앞에서는 온갖 인간 이하의 수모를 다 당하는 것과 같다.


100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데, 20~30은 하사금이나 뇌물로 취하게 하여 불의에 동참하고 적극성을 띄게 만든 원조가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월급처럼 받아 왔던 회사의 상여금 제도이다. 이제는 상여금을 포함한 연봉개념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월급과 다름없는 것을 다른 명목으로 주는 일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386세대는 더 이상 조폭의 행동대장 노릇을 그만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도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짓은 자신의 나이 먹음과 사회의 변화를 부인하는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존심을 찾아도 먹고 살만한 세상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진정한 자존심을 찾아야 한다. 이를 확실히 터득한 사람들이 이미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욕심을 내다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다.


386은 나이 먹음에 따른 가정과 사회적 지위에 걸 맞는 시대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금 모든 면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나 투명사회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려서 그 속도가 고속열차의 수준이다. 이젠 불의와 타협을 끊어야 한다.


젊은 날의 혁명은 혼자 있을 때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면, 현재는 한 가정을 책임지며 사회의 주축으로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위기가 와도 다음세대에게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 가를 몸소 보여주는 인생의 선배로써 선행학습을 시켜주는 값진 일이다.


386세대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의와 자존심을 세워서 진정한 자존감을 되찾아야 한다.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