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왜곡 된 효가 부르는 참화 2.

두 아들 아빠 2007. 1. 5. 22:12
 앞서는 심성이 비틀어진 여성의 문제를 거론 했지만 이번엔 남성의 문제를 살펴본다.

누구의 원인과 문제였냐는 식의 이분법적인 논리로 접근하면 문제를 풀기 어렵다.


신혼 초에는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한 다툼이 제일 많다. 시댁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권력구조가 완전한 독립가정을 이루고 싶어 하는 여성을 억울하게 한다. 그런 관점에서 부모의 간섭이 없는 혼인의 출발은 일단 성공적이다.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세뇌를 당하다시피 하여 사랑하는 아내를 자기의 옛 가정의 울타리 안에 집어넣으려고 애를 쓴다. 이런 양상은 부모에게 불효와 저항이 심했던 자기 자신을 부모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헌상함으로써 자신의 노력은 보태지 않고 면죄부를 얻으려는 심리이다. 못난 자식이 더 효도 한다는 말은 같은 맥락이다.

한 인격체인 여성을 자신의 부모에게 속죄양으로 받치려는 짓는 결코 성공 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다.


예전에 군사독재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유독이 ‘충’과 ‘효’를 강조했다. 자신들의 불의함을 감추기 위해서 뽑아낸 국민을 정신적으로 올가 매려는 대국민 계몽 선동 책이었다.

‘효’라는 사다리의 꼭대기를 힘겹게 올라갔더니 ‘충’이라는 놈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효’라는 개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자녀가 부모 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을 때 부모의 권면을 잘 받아들이는 일이 효의 전부이다. 그렇지 못하여 일어난 책임은 자신이 다 지고 가야한다. 그게 불효의 대가이다.


늘 말해왔지만 부모 가정은 자녀가 새 가정을 이룬 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이웃으로 남아있는 존재다. 친일은 나라를 팔아먹기 이전에 이웃을 팔아먹은 악독한 행위이다. 이런 자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사상을 갖은 자에게 표를 찍어준 대한민국의 어른 50%는 이웃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새 가정을 꾸리면 자신의 가정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 여기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돌려받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연로하여 몸이 아프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서글프지만 자녀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다. 이때 자녀가정의 눈치를 보아야한다. 길렀으니 마땅히 보살피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도적의 마음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왜 교회에 나가는 알 수가 없다.


 이제는 부모나 시부모에게 스스로 얹혀살려는 좀비족이라는 젊은이들도 나타났다.

부모의 돈과 노력을 어른이 되어도 계속 갈취하려는 짓인데, 자녀를 진정한 어른으로 만들지 못한 대가를 치루는 일이다. 힘들지 않게 자식을 주장 할 수 있어서 이를 오히려 반기는 넋 나간 부모들의 종말은 부모와 자식, 손자세대까지 함께 찌질거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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