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은 어찌 먹고 사는 이야기가 없냐!’고 자물통을 채우고 태클을 걸어온 분이 있었다. 그래서 해가 가기 전에 이에 관한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개인적인 직업관에 관하여 말하자면 폼 나고 돈 잘 버는 직업을 원했다. 다행(?)히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요즈음은 하루 세끼를 꼬박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먹고사는 문제에 관하여 집중하거나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면 참 불쌍한 영혼이다. 어렸을 때는 ‘삶이 살아 갈만하나, 그렇다고 거저 얻는 것은 아니다.’라는 관념만 있으면 된다.
부모의 삶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강팍한 삶이라면 도무지 이를 알 수 없지만 부모 된 자의 도리는 자신의 가정을 아주 어렵지 않게 이끄는 사명이 기본이다. 보통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사명은 잘 주어지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 세상이 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대게는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고민하게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먹고 사는데 깊게 연관시키는데 반대한다. 먹고 사는 것과 자신의 재능이나 기능이 맞으면 몰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사람의 역량을 모두 먹고 사는데 집중하면 삶의 균형감이 현격히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사춘기 이전에 자이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타난 재능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서 한 쪽으로 몰아가는 짓은 자녀의 영혼을 무시하는 일이다. 더구나 이를 먹고 사는데 연관 시키면 영혼이 좋아해서 시작한 피아노는 결국은 꼬마 애들 데리고 가르쳐서 밥을 먹는 서글픔으로 전락될 수 있다. 먹고사는 일은 자신의 재능과 좀 맞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먹고사는 일은 가시밭에서 땀을 흘려야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천재성이 분명한 재능은 다르다. 평범한 집안에 천재가 태어나면 그 집안으로서는 ‘재앙’이다. 천재성은 인류를 위해서 써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재능을 알면서도 썩히는 짓은 죄를 짓는 일이다. 천재성이 잘 드러나도록 온 집안이 집중하며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좀 심한 표현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재앙’인 것이다.
진정한 천재는 한 가지 재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예전에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아역 주인공은 실제 피아노연주에 천재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영화촬영을 마치고 학교에서 본 시험에서 8과목 모두 만점을 받았다. 과연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를 부모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유수한 음악대학에서 제의가 있는 상황에서 결코 행복한 고민만은 아니다.
천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예능방면에 재능이 남다른 경우 예술학교 진학을 고려하게 되는데, ‘빨리 거지가 되려면 자녀를 예술계통으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예술계는 이름 있는 교수의 고액사사를 받아야 하고 해외유학은 필수며 처음엔 자비로 연주회도 열어야 한다.
십 수 년 간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본인의 자질을 탓하기 보다는 받쳐주지 못한 집안을 남은 인생 내내 원망하게 된다.
행복한(?) 보통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미래에 유망한 직종을 예측하여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이젠 웃기는 짓이다. 먼저 이 과정에서 자녀의 재능을 잘 살피지 않을 것이고, 또한 부모가 이를 예측하고 정확히 판단한다면 부모부터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와 산업의 발달이 더디게 진전 될 때는 간혹 예측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오늘날의 사회와 더구나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극히 민감한 우리나라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 나라와 산업의 유기적인 관계성에 중점을 두고 살펴야 한다.
세상에 나를 어설프게 맞추려는 노력보다는 세상이 필요한 사람으로 나를 다듬는 것이 원칙이다. 돈이 되는 곳에 줄을 서지 말고 온전히 나를 다듬어서 세상이 나를 필요해서 부르려면 돈밖에 줄 것이 없다는, 배짱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도저도 생각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재로써는 공무원, 교사, 공기업과 대기업의 사원 등이다. 더구나 판사,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등 사(士)자 그룹으로 통하는 직종은, 시험을 준비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단 한번의 시험 통과로 평생을 보장 받는다.
너무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아주 힘든 고생을 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만을 믿는다.
또 한방이라는 것에 매료 된다. 사(士)자 그룹들이 심심치 않게 증권에서 돈을 날리거나 심지어는 도박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으로 삶과 의식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상태에서는 고소득과 직업적인 우월감만으로도 삶을 멋지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비교 대상은 항시 같은 그룹이나 더 상위 층을 바라보기에 아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는 이들도 극심한 경쟁 속에서 과거와 같은 영화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士)자 그룹에게 가장 부족한 면이 사람과의 관계성이다.
인간의 삶은 관계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잘 먹고 잘사는 이유는 누군가 헐값에 착취당하는 관계성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게 온전한 의식의 확대이다.
가족과 모처럼 저녁 외식을 하면서 식당 여종업원이 좀 불친절 하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녀의 친절한 서빙을 받는 같은 시간에 엄마 없이 쓸쓸하게 밥을 차려먹는 어린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사람간의 온전한 관계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다 착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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