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아들의 공부와 시험

두 아들 아빠 2006. 12. 19. 12:10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아들은 그제 저녁, 친구 세 명과 거실 가운데에 상을 펴놓고 둘러앉아 음악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같이 하기보다는 친구들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피아노를 오래 해서 음악 실기와 이론은 제법이다.


  한 시간 전에는 안방 침대에서 담요를 둘러쓰고 한 바탕 울고는 제방에 가서 잠을 자고 있다가 친구들이 찾아오니 언제 울었다는 듯이 일어나서 친구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어제 음악 시험은 유일하게 100점을 받아 왔다.


아들이 슬피 운 이유는 평균 90점을 받아야 다시 춤을 출 수 있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실망감과 회한이 합쳐서 그랬을 것이다.

 

  아들은 "마지막 잔치'를 끝으로 두 달 동안 학교가 파하면 곧장 교회에 가서 밤12시 넘어서까지 공부를 하였다. 목사님 가정은 아들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아들은 자기를 온전히 내려놓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아들이 애를 써서 노력한 것을 잘 알기에 잠시 내 눈가에 눈물이 젖었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교회와 학교와 가족이 나서서 아들에게 신경을 써 주었다. 이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난 2학기 중간고사에서 낙제 점수를 받고 춤과 핸드폰, 피아노 레슨, 컴퓨터, 학생회장 출마 등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부에 열중한 아들이 어제로 나흘 동안의 시험을 끝냈다.

총 11과목 필답고사에서 평균 86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국, 영, 수 세 과목의 평균이 92점이라는 게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수행평가점수를 합쳐도 평균 90점은 안될 것 같다.


  한참 사춘기인 아들은 올 한해를 정말 다이나믹하게 보냈다. 피아노 콩쿨대회 은상, 비-보이 춤으로 축제 때 학교를 떠들썩하게 하고, 매주 목요일에 주연 역할인 네 번의 텔레비전 방송 출연(12/21 저녁 10시 KBS 1.에서 마지막 분 방영을 한다.)을 안 하고, 공부에 열중하여 그동안 두 번의 낙제와 한 번의 회생을 뒤로하고 마지막에 우등에 가까운 실력으로 올 한해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아들이 억울한 마음 없이 공부를 시작하길 진정으로 바랬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삶을 살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노력은 하찮은 것이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의 허락해 주심과 남의 도움이 훨씬 더 컷 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믿거나, 자신만을 위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이 세상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열심으로 이루었고,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공부를 한 엘리트들의 '자만'과 '높은 보상심리' 때문이다. 자만은 자신을 어렵게 하고, 높은 보상심리는 사회와 자신을 같이 어렵게 한다.

 

  아들이 텔레비전 출연을 가지 않고 나서인 약 한 달 전쯤에 내가 익스프레션의 단장의 메일로 장문의 글을 보냈다. 단장은 답장으로 공부를 올려놓고 언제든지 오라는 메일을 보내 왔다. 아들은 그 답장을 인쇄해서 몇 날을 품에 지니고 다녔다.


  내년 3학년 한 학기를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수학을 가르쳐 주던 사촌누나의 도움도, 영어를 가르쳐 주던 교회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내기로 했다.

 

  아들이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인상 깊었던 세 가지 일은~

엄마와 아들이 식탁에 마주 앉아서 서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공부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아마 국어 과목이라고 기억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다정다감한지 질투가 날 정도였다. 그래서 옆으로 슬며시 다가가서 “너희들 둘 연애하니!” 라고 야지를 놓는 말을 했다.

 

두 번째는 애써 외면을 하거나 싫어하는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이다. 아들은 내내 과학 과목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외면을 하다시피 했다. 결국 그 과목 점수가 낮아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난 누가(뭔가) 싫어!” 이런 생각과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무려 11과목을 모두 잘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그래서 우등생이 왜 억울한지를 알았다. 성취감이 억울함을 채워 주기를 바라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시험이 끝났을 때 무렵 아들의 교실로 찾아 갔다. 아들은 밝은 얼굴로 날 맞이했다.

수고했다고 어깨에 손을 얻고 격려를 해주었더니 내게 돈을 달란다. 만원을 주니 천원만 더 달란다. PC방에서 놀다가 친구들과 공원에서 눈싸움을 하고 오겠다고 한다. 아들은 늦은 저녁을 먹고 안방 침대에서 골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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