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모이자-돈 걷자-교회 짓자

두 아들 아빠 2007. 1. 29. 19:52
 

모이자-돈 걷자-교회 짓자

어느 목회자의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이렇게 호소 한 글을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상가 3층을 빌려서 예배당을 꾸며놓았다. 그런데 시시한 시설로 인하여 노인 몇 분만 나오지 도통 젊은 사람이나 중년층은 오지 않는 것이다. 어렵사리 한 50여명의 교인이 출석하게 되어서 좀 넓은 대로 교회를 옮기려고, 하자 슬슬 떠나는 것이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쾌적함은 원하면서 자신의 돈은 내기 어려운 것이다.


동네 슈퍼와 꾸질한 재래시장은 다 죽고, 쇼핑하기 쾌적한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몽땅 쓸어 가듯이 오늘날 교회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마이카 시대와 교통의 편리함으로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더욱 연약한 믿음의 길로 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운영의 차원을 넘어서 세속의 ‘경영’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경영학 학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경영학의 가치 기준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이자-돈 걷자-교회 짓자가 최대의 가치가 되어버린 교회를 보면서 타락한 예루살렘의 성전을 단숨에 부수어 버리고, 단 삼일 만에 새로 짓겠다는 예수님의 서슬 퍼런 진노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일산의 상업 중심가에 있는 대형 교회는 400억이 넘는 교회를 지으면서 교단의 명의로 하면 면세인 것을 알면서도 목사 개인 명의로 등기를 하여 수억원의 취득세를 낸 애국자다.  문제는 성도의 돈을 걷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애국을 했다는 가증스러움이다.

그 교회 외벽에 목사의 이름을 크게 문패처럼 달아 놓았다. 애국의 대가로 교회건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신자 수가 만 여명이 넘는데, 장로는 단 두 명뿐이었다. 그나마 한명의 장로는 교회건물을 짓고 나서 잘렸다. 그러면서 대한 예수교 장로교회 소속이라고 한다.


성북구에 있는 공룡이 알을 품은 듯한 건물의 교회는 공사비를 무려 40억이나 넘게 떼어먹고 버티다가 건설회사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하여 1심판결에서 완패했다. 그 교회는 주일날 헌금 통을 압류 당 할지도 모르다. 공사비로 부도난 어음을 준적도 있는 그 교회의 강대상은 천만원이 넘는 크리스탈로 되어있다.


이들은 아주 뻔뻔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막히면 목사를 핑계대고, 목사는 교회 이름 뒤에 숨고, 그렇지도 못하면 맨 나중에 하나님을 팔아먹는다.

시장 재건축과 대형교회를 동시에 지은 적이 있는 건설회사의 관계자는 교회의 뻔뻔함이 시장 사람들보다 훨씬 못함을 넘어서, 시장사람들이 더 존경스럽다고 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대형교회는 진정한 교회됨을 추구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그 반대로 가기 마련이다. 초대교회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마이크가 발명된 역사가 100년 남짓 되지 않아서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이유로 수천명의 회중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다. 그런 교회는 성도의 삶을 살피고, 형제, 자매의 교제를 나눈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근에 대형교회가 생기면 중소형 규모의 교회는 압박감을 갖는다. 교인이 빼앗길 까봐서도 있지만 이보다 주눅이 들어서 그렇다. 자기들도 지어야 되지 않느냐고 강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되심을 져버리고 엉뚱한 짓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함축적으로 축약하여 마치 구호를 외치듯이 전도하자 - 돈 걷자 - 교회 짓자! 를 부르짖으며 스스로 호수에 뛰어드는 돼지 떼 마냥 돌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