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엉터리 교회의 패악함. 아줌마 부대가 이끄는 한국교회

두 아들 아빠 2007. 1. 31. 09:06
 

엉터리 교회의 패악함

교회가 사회 구제에 힘을 쓴다며 헌금의 일정량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면서 선한 척을 한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는 훌륭한 일이나, 교회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일에 엉뚱한 힘을 쏟는 일이다.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니다. 그런 조직을 갖출 필요도 없다. 이는 전문가 집단이 해야 실효와 지속성이 더 높아서 효과적이다. 목사가 이웃을 물질적으로 구원하고 싶으면 성도들에게 적십자 회비나 잘 내라고 하면 된다.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애를 써야 한다. 그렇게 하면 따로 그런 열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믿음으로 가는 길과 성도의 온전한 교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쓸데없는 행사를 많이, 자주 주체해서 성도의 힘을 뺄 일이 아니다.


교회에서 목회자의 편견이나 편애와 성도들 간의 문제로 상처를 받아서 믿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차단되어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이 많다. 이는 교회가 올바로 서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교회에서 대접받는 세력권 안에 있는 자들 역시 믿음의 확증이나 진리에 자유로움을 깨달지 못하고 세상의 힘을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의 힘을 빌려 거룩한 권위를 얻으려고 안달한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온전한 교회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이 연약하여 그저 사람끼리의 모임을 이끌어 온 결과다.


교회에서 인간적인 어려움을 당하여 마치 영혼이 회손 된 망나니마냥, 교회와 기독교에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애초에 믿지 않은 사람보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훨씬 크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땅에 수많은 목회자들은 전적으로 자기들의 책임으로 알고 새 신자를 끌어 모으려고 하지 말고, 이들을 찾아 나서서 억울함을 풀어 줄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그게 회개 이전에 할 일이다.


아줌마 부대가 이끄는 한국교회

예수님은 출생도 험한 곳에서 나시고, 출신지도 변방인 나사레이며, 육신의 부친인 아버지의 직업도 별 볼일 없는, 지금의 표현으로 노가가 목수다. 전지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 세상에서 전혀 주목받지 않는 신분으로 이 세상에 나오심을 오늘날 사회에 기득권이 된 기독교인들은 잘 성찰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외모에 관하여 제자들은 복음서에서 전혀 언급이 없다. 예수께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리 미남은 아니신 것 같다. 오늘 날 아줌마가 대부분인 한국교회에서는 목사의 외모와 목소리가 교회부흥에 큰 작용을 한다. 신학교 이전의 학력이나 경력이 화려하면 더 열광한다.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게 목회자를 판단하는 방법이나 현혹의 도구가 되어서 안 된다는 뜻이다.


여인들의 심성 중에는 진정한 권위 아래 거하기를 소원한다. 그 속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다. 유독이 아줌마 부대를 많이 이끌고 다니는 목회자는 이런 속성을 간파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한 번 빠진 아줌마들은 눈과 이성이 멀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들이 억울함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이 복음사역을 하실 때도 많이 따랐으며 그들의 보살핌도 받으셨다. 당시에 여인이란 들판의 양과 남자 사이에 있는 존재였다. 이혼도 남자들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 이런 여인들을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시고 억압하는 남자들을 질타 하셨다. 여인들에게 엄중한 말씀도 함께 주셨다.

여자가 남자를 주장하려하나 그 그늘 밑에서 있어야 온전(평안)하다고 하셨다.


한국의 억울한 아줌마들이 교회라고 불리 우는 곳을 의지하여, 그나마 가정을 지키게 된 순기능적인 면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나, 마땅히 가정을 돌봐야 할 아줌마들을 봉사를 은근히 강요하는 분위기를 잡아가 주일 내내 교회를 맴돌게 하는 짓은 올바른 가정이 교회의 분자 됨을 모르고, 하는 짓이다. 가족을 팽개치고 새벽기도를 나올 일이 아니라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맛있는 아침밥을 짓는 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큰 사명이다.


때때로 울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이 땅에 억울함이 많은 아줌마들을 모아 놓고 울게 하는 게 기도와 신앙생활이 아니다. 이는 어린아이 같이 아주 연약하고 낮은 수준의 신앙이다. 성도의 의식을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교회라 함은 먼저 성도가 떠올라야 한다. 예배당 건물이나 십자가, 목사가 떠올라서는 안 된다. 예배당처럼 비효율적인 건물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교회는 사람을 끌고 붙잡아 두려고 마치 구청에서 운영하는 부녀복지회관처럼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중 내내 교회 안에 아줌마들을 붙잡아 둔다. 가정을 돌보고, 세상에서 열심이 일하 것도 다 하나님나라의 사람으로서 영적인 삶을 수행하는 일이다. 교회에 아줌마들을 쓸데없이 붙잡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한가하지 않고 바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줌마들이 이끌기는 해도 정작 교회가 남성중심사회라 발언권이나 결정에 따르는 의사참여에는 미미한 존재다. 교회가 민주사회에서 발전 했지만, 교회에 내에는 민주적인 것은 별로 없다.

가정의 권위와 선함은 가정의 머리로 세운 가장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가장이 도무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함은 한치 앞도 못보고 사는 자신의 힘을 믿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다 큰 일이 닥치면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허접하게 임해도, 교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아줌마들의 묻지 마식의 맹목적인 충성 때문이다. 이들의 상처 받은 영혼을 이용해 먹는 교회와 목회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믿음은 온 가정이 같이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받들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은혜에 거한다.

목회자는 아줌마들에게 불신자 남편을 위해서 그저 기도만 하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 앞에 나오도록 노력하라고 해야 한다. 그런 의식을 심어 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정한 실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