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교단

두 아들 아빠 2007. 1. 30. 21:07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교단

한국교회의 교단은 개 교회를 묶는 연합된 힘이 느슨하다. 그래서 교회가 달라도 신앙고백이 같은 사람들은 다 같은 형제, 자매라는 의식이 옅다. 민주사회에서 이들이 단결한다면 전쟁이 일어나고, 약탈이 자행되는 일은 일어나지 못한다. 그런 곳은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를 받지 못한 곳이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교단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교단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면 서슴없이 탈퇴한다. 이처럼 교단이 권위를 잃게 된 이유는,

첫째 교단이 힘 있는 몇몇의 목사들 중심으로 되어 있고,

둘째 자신의 문제는 자기 멋대로 처리함에 있다.

셋째 교단의 어른이라는 자들이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들이라서 자신들의 문제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기에 자정의 능력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런 느슨한 교단이 이번엔 희한하게도 일치단결 했다. 기독교 모든 교단은 사학법 개정을 반대한다며, 이를 지키기 위해서 순교를 각오한다고 바퀴달린 십자가를 매고 거리로 나섰다.

이런 추악하고 천인 공로 할 일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박종철 물고문 치사사건을 만천하에 알린 천주교 정의사회구현단만 이를 찬성하고 나섰다. 그런데 언론은 이를 숨기고 있다.


그들이 뭘 지키려고 순교를 한다는 말인가? 총 이사 7명중에 2명인 개방형이사가 사학에 들어오면 기독교 이념을 구현 할 수 없다고 한다. 의결수의 다수를 보장하고 있는데도 반대를 함은 형사적인 책임과 불의한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순교란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신앙을 지킬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선택하는 믿음 있는 자의 거룩한 의식이다.


기독교를 믿는 신앙인은 자기 자녀를 모두 기독교 학교에 보내야 원칙이다.

몇몇 동물의 습성으로 진화론을 확정된 진리로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서는 믿음의 자녀들은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오늘 날 인간은 성형 수술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기독교 학교라고 세워 놓고 국가의 돈을 받아먹고 운영하는 주제에, 돈을 준 국가의 감독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세상 논리로 보아도 비양심적인 짓이다.

그동안 잘 해먹었으면 이제는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교회를 때려지를 일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올바른 교회 학교를 세웠어야 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학생을 받아서 예배를 거부하는 어린 학생에게 망신을 당하는 꼴을 교단의 어른들은 큰 창피함으로 알아야 했다.


기독교 교단의 어른은 순교의 시기를 많이 놓쳤다. 일제에 탱크와 전투기를 사주기 이전에 순교를 했어야 했고, 박정희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학교를 몽땅 문교부 산하에 집어넣으려고 할 때, 그들이 주는 돈을 패대기치고, 저항하며, 이를 독재의 총칼로 억압 할 때 순교했어야 했다.


주는 당근을 받아먹는 대신에 신앙을 내려놓고, 군사 독재와 야합의 길을 걸었다.

그 이후로는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으며 야합의 대가를 누리며 창피함을 모르고 살아 온 것이다. 불의한 세력과 야합의 결과는 어긋난 자존심만 남는다.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한국의 기독교 대학에 지원하시면 논술에서 분명히 떨어 질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는 자들은 들어 올 수없게 만들었다.

논술 제목은 “기독교 대학에 있어서 사합법 개정의 역기능을 논하시오”였다. 예수님은 단 한 줄만 쓰셨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이를 본 장로인 감독교수의 핸드폰 연락을 받고 온 집사인 두 명의 수위에게 답안지에 이름도 쓰지 못하시고 끌려 나가셨다.


사학법이 개정되지 못하면 자녀 중에 공부를 특출하게 잘해도 사학에 연줄이 없으면 유학을 보내서 대학교수를 꿈꾸는 짓은 아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간강사나 지쳐나가 떨어질 때까지 열나게 한다가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니까. 그 좋은 철밥통을 남의 식구에게 거저 줄 놈은 없다.

 

교육은 사상을 담아내고 가르치는 일이다. 기독교계는 이번 기회에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는 진정한 기독교 학교로 거듭나야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