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대한민국 중년부부 어떻게 무엇으로 사는가?

두 아들 아빠 2007. 2. 7. 15:21
 

중년 부부의 유형

아래 차례는 심각성이 큰 순위다.

(사람을 물건이나 짐승에 비유하면 안 된다는 게 소신인데, 마땅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따로국밥형 부부관계를 왜 가장 심각한 순위로 올렸나하면, 자신들은 서로에게 구애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지 모르지만, 자녀들이 부모의 모습을 보고 부부관계와 역할에 심각한 왜곡을 줄 수 있다. 결혼을 꼭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도 들게 한다.


서로를 방관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부부 각자가 비슷한 만족함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한쪽은 더 억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치사해서 방관한다. 문제는 대게 여성이 어린 자녀를 자기편으로 두고 남편과 대립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자녀들은 생존 본능으로 엄마에게 달라붙기는 하지만 자아의식이 생기면서 속으로 멸시하게 되어있다. 독립을 한 이후로는 엄마의 처지를 애처롭게 생각하면 다행이다. ‘초월적 자포자기’ 여성은 비교적 삶을 잘 유지한다.


사례 1.

아버지가 자신이 집안에서 왕따라고 느끼게 되면 일말의 위기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런 가장이 경제적으로 능력이 되면, 아내에게 적절한 돈을 쥐어지고는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했듯이 모든 문제를 항상 돈으로 해결 하려든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가족은 이를 이용하게 된다. 자신은 돈을 써서 모든 것이 한방에 해결된 듯한 기분이 들겠지만 그렇지 않다.


남자의 경제력 때문에 쉽게 이혼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가 경제력이 상실되면 황혼이혼을 당하기 딱 알맞다. 그렇지 않으려면 적절한 시기에 전환을 해야 하는데 50세 중반까지 이런 구도를 유지한다면 자신도 변화 할 수 없고, 상대방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남자가 시도는 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뿐이라 좌절하고 포기한다.

이후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변 할 수도 충분히 있다.


사례 2.

경제적인 능력도 되지 않으면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하면 심각하다. 학력에 관계없이 이런 남자들이 폭력을 쓰는 경우가 많다. 더 말할 나위 없는 최악의 부부 관계다. 그런데 자녀들에게는 잘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자신도 그런 구조에서 자랐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설령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 치더라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감정으로 덮어 버리는 것으로 이는 폭력의 대물림 중에서 가장 심각한 예다.


두 가정 모두 급작스러운 사고나 위기가 오면 약자에게 핑계를 댄다.


고양이와 쥐 사이 같은 부부는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짓누르는 관계여서 젊은 세대라면 당장 이혼을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남자들이 당하는 어려움이다. 자신의 아내는 사회적으로 이혼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참고 살았지만, 우리의 다음세대는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평생을 당하고 산 친정엄마가 더 용납하지 않는다.


딸을 지켜준다는 의도지만, 실은 자신의 남편에게 당한 것을 사위에게 푸는 행위다.

문제는 이럴 때 남편의 태도다. 방관적인 사람도 있지만 아내와 합세해서 사위를 깔아    뭉개는 것이다. 자신의 저지른 악행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에게 생긴  자신들의 내제된 분노를 남의 자식인 사위에게 쏟아 붓는 것이다.

사돈을 맺으려면 중년시절의 부부관계를 잘 알아봐야 한다. 그들의 중년이 영혼이 황패했다면 그 자녀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점차 호전이 된다. 그러나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계속 유지되면 이도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 이런 기질이 남편의 적절한 사업 실패나 단기간의 실직은 마초의 힘을 빼는 효과가 있어서 유익한 면도 있다. 그러나 원상회복이 되기까지지 때때로 불지옥처럼 살수가 있다.


무덤덤한 부부는 따로국밥 형과는 다르다. 서로가 최대한의 의무는 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삶의 잔재미는 없다. 전업주부라면 따분해 하고 하루하루가 무료하기 짝이 없다. 이들 부부가 싸우는 방식은 아주 특이하다. 워낙에 서로가 말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것으로 자신을 표시하기에 서로가 바쁘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가정을 가끔씩 묶어주는 일은 집안의 우환이다. 위기가 복이 되는 경우다. 위 두 가정은 억지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서로에게 떠넘기거나, 덤테기를 씌워서  더 큰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게 된다. 하지만 무덤덤하지만 서로에게 애정과 존중이 있기에 삶을 이끌어 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문제는 자녀들이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집안은 노처녀, 노총각이 유난히 많다.


개와 고양이 부부는 가끔 아옹다옹 다투면서 사는 부부다. 언성이 높아 질 때도 있지만 폭언이나 폭력은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짓도 결혼 10년 이내에 끝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자녀들이 자아의식이 생기는 10살을 전, 후 해서를 염두엔 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자녀들이 폭력적으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유형의 부부는 고학력일 뿐 아니라, 남녀 공히 아주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감정에 쉽게 치우치지 않는다. 부부관계가 진전되지 않거나, 악화되는 이유는 자신들의 문제보다는 외적인 것에 있다. 시댁이나, 처가의 문제 등이다.

자신들은 잘살려고 해도 주변에서 계속 딴지를 거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그렇고 남이 보기에 잘살기 때문이다. 껌 딱지는 잘 사는 사람에게 붙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첫째 ‘부부는 같은 나라’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각자 집안의 약점을 들추면 이성을 잃거나, 둘째 독립된 가정의 의미를 저버리고 각자의 집안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서로에게 서운하고, 감정의 앙금이 깊게 남아서 안타까운 일이다.


바늘과 실형은 맞벌이 부부나 사업을 같이 하는 부부들에게 보이는 현상으로 남자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아주 성실하게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기본 전제다. 전업주부의 가정에서도 있을 수 있는데, 여성의 중년 이후의 그동안 정체된 의식이 문제 된다.


대게 어느 한쪽이 열정이 넘치고, 상대방 역시 이 열정을 높이 산다. 부부가 삶에 있어서 상호 보완적인 면이 있어서 이상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다.


남자는 억울해 하지 않는 ‘성실’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많은 복을 누릴 수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부부는 극소수라고 할 수 있다. 현상에서는 최고의 부부관계다.


이 부부관계의 한계는 삶의 질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잠시 정신을 놓거나, 뜻하지 않은 위기는 일순간에 관계를 악화 시킬 우려는 어느 부부처럼 언제든지 있다.


우환과 위기는 어느 부부에게나 올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피해 갈수 없다. 다만 신앙  생활로 자신의 삶을 잘 살피는 눈이 생겨서 실족하지 않고 인생을 영위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을 수 있으며, 설사 위기가 오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먼저 깨달고 억울함이나 분노 없이 해쳐 나가는 힘이 주어진다.


천생연분에 해당 되는 부부관계는?

본적도, 만나 본적도 없어서 모르겠다. 같이 오래 살았다고 다 천생연분은 아니다.

삶 속에서 각자가 서로나 자신에게 억울함이 없어야 하고, 같이 산 삶이 보람 있고, 이 진정으로 즐거워야 한다. 만일 다시 태어나서도 같이 산다는 것까지 아니더라도 60살이 넘어서 부부가 공히 한 무덤에 묻히고 싶다고 하면 천생연분이라 해도 좋다.


각 유형의 연합

최악의 경우는 ‘따로국밥+고양이와 쥐’ 다. 다음으로‘ 따로국밥+무덤덤’이며, ‘따로국밥+개와 고양이‘는 계약동거의 형태로 드문 경우 이지만, 요즈음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관계다.

‘따로국밥’과 ‘바늘과 실’이나 ‘천생연분’은 전혀 연합 될 수없다.

비교적 삶을 잘 유지하는 대다수는 무덤덤+바늘과 실‘과  ’개와 고양이‘+바늘과 실’이다.


글을 끝내며-

혼인은 남녀가 행복하게 살수 있는 기본적인 면과 필요 충분한 조건을 동시 갖춘 일이다.

그러함에도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과 행복이 없는 게 대한민국 중년부부의 현실이다.

각 유형에 대한 분석만 있고, 해결책이 없어서 아쉽다.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이미 10년 이상 살아오면서 고착화 된 것들이 많아 남이 지적을 해도 잘 듣지도, 실행하지도 않는다. 다만 명심을 해야 할 것은 부부 서로가 억울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모두가 자녀들로 하여금 반듯이 되갚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온전한 부부와 가정을 이룬다는 엄청난 사명을 이루기 전과 이를 수행하는 과정 중에서 공부도, 수양도, 점검도, 자격도 없이 하는 일이 너무나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