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1991년 압구정동에서 유괴된 유형호군의 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갑갑함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유괴된 엄마가 자기 가슴을 치는 장면이 절정이었다.
유괴는 범죄 중에서도 죄질 가장 악랄한 짓이다. 사건의 해결 여부에 따라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세우거나, 순식간에 떨어트리는 것에 유괴 사건만한 것도 없다. 범죄로부터 가정, 특히 자녀를 지켜주지 못하면 국가에 대한 신뢰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1999년 6월에 일어난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가 국가가 준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을 간 예가 단적인 경우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유괴사건은 아주 중요 사건으로 취급하며 연방경찰(FBI)이 수사를 전담한다.
우리 경찰의 신뢰도가 떨어져서 막상 유괴 협박 전화가 오면 직접 범인과 돈 거래를 하여 해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유괴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처음엔 그런 시도를 했다.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경찰이 단연 으뜸이다.
경찰이라기보다는 그냥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다. 뭐 하기야 경찰도 인간이고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허리우드 영화의 로보캅 같은 경찰에 익숙한 우리는 더욱 답답함을 느낄 일이다.
문제는 44일간 무려 60여번의 협박 전화를 받으면서 돈만 뺐기고 아이는 싸늘하게 죽은 시체로 돌아 왔다는 사실이다. 과학수사라고 하면서 음성분석과 발신지 추적에만 몰두하는 경찰을 보면서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죄 심리학자가 범인의 협박 내용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심리전이 전무했다. 녹음된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서 아이의 죽음을 의심하는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하는 범인을 보면서 처음부터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서 심리전을 구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영화의 사실성을 전제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가 유괴 단 하루 만에 질사를 했고 냉동보관 되었다는 정황을 보아서 범죄가 일어났던 2개월 전후로 문을 닫은 식당을 전면 수색을 했었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9살의 비만인 아이를 냉동시킬 수 있는 곳은 식당의 대형 냉장고며, 영업을 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식당영업에 실패한 자나 그 주변 인물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다.
또 실제 협박 요구 금액이 7천만원이라면 영업의 손실이 협박 금액의 절반 수준 정도라고 짐작 할 수 있다. 그의 존대말을 쓰는 습관도 식당업 종사자란 확신을 들게 하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15년 밖에 되지 않음에 분노한다. 이에 관하여 큰 아이가 수사공소 시효는 종전 그대로 남겨두되 처벌에 관한 시효는 더 늘려야 한다는 기막힌 제안을 했다. 다행인 일은 요사이는 유괴사건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괴범은 부모와 긴밀히 연락을 해야 하는데 통신의 발달로 발신자 추적은 물론 위치 추적까지 신속히 되어 유괴를 하고 돈을 갈취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요즈음 국내영화는 거의 교회와 기독교를 꼭 화두에 집어넣는다. 신에 대한 무기력한 기도가 나오고, 당하지 않은 자들의 무책임한 위로가 얼마나 상대를 상처주는 지와, 기복신앙이 판을 치는 실력 없는 기독교가 이 영화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유괴된 집의 가훈은 ‘폼 나게 멋지게 살자’다. 한때 자신의 잘나감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종종 망각하며 산다. 그런데 술에 취해서 가끔 ‘아님 말고...’ 라고 꼬리를 내린다. 아버지는 유괴된 아들에게 ‘남자답게 폼 나고 꿋꿋하게 버티라’고 독백하다가 이내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라고 절규한다.
이 영화를 보고 전화 음성과 필체만을 남긴 보이지 않은 범인에 대한 분노만 있다면 안 된다. 이 사회의 전반적인 심각한 오염에 대한 걱정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받는 시련보다 자녀에게 온 어려움을 부모 된 자들은 더욱 힘들어한다.
더구나 어린 자녀가 죽음으로까지 간다면 이세상의 그 어느 부모도 견디기 어렵다.
이 영화에서는 “내일부터는 나 하나님 안 믿어!” 라고 절규한다.
이는 개인이 받은 죄의 대가는 아니다. 우리 전체에 대한 죄의 대가다. 그런데 '나는 아닐꺼야' 하며 애써 외면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아이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만큼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12세 이상 가(可)’ 이지만 중학생 이상이 봐야 할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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