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자녀에게 있어서 앞으로 살아 갈 세상을 준비하는 곳이다. 그 중 하나가 대화를 통한 논리의 토대를 쌓아야 한다. 그러나 그 안에 온전한 대화는 없다. 그 이유 중에는 선천적인 원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르지 못한 권위주의가 소통이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만큼 논쟁의 수준이 낮고, 논쟁 자체가 거의 없다 시피한 나라도 드물다.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에서 조차 첨예한 논쟁이 벌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모든 학문이 질서 정연하게 정립되었다는 뜻인가?
소통을 비경제적으로, 논쟁을 무질서와 혼란으로 인식하는 까닭은 논쟁의 끝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들어 날 것을 염려해서 애초부터 싹을 잘라 버리려는 의도다.
이를 바탕으로 친일반민족 집단은 일본의 획일적인 질서주의 추구하고, 군사반란 세력은 조폭같이 서로의 나와바리를 인정하며, 이들 두 세력은 야합으로 끈끈하게 맺어졌다.
논리성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정의와 선이다. 그래서 정의와 선에서 멀어진 사람은 소통과 논쟁은 다 쓸 때 없는 짓이라고 한다. 그걸 해서 돈이 나 오냐, 밥이 나 오냐고 한다. 이는 스스로 돈 벌래와 밥 벌래 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들이 늘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자들이다.
돈과 밥이 문제가 아니라, 소통과 논쟁을 막아서 벌어진 결과는 참혹했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고,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젊은 대학생이 죽어 나가고,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이를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이며 사회적으로 ‘안전의식의 결여’라고 말하는 대학교수와 지도자가 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인류의 모든 전쟁은 소통과 논쟁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문제와 이혼도 소통과 논쟁이 없어서 발생한 참혹한 일이다.
소통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여기에 오해나 이견이 있으면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은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이성적인 행위다. 따라서 논쟁을 억누르면 이성(理性)은 자랄 수 없다.
논쟁이 감정의 대립을 넘어서 쌈박 질로 치달은 이유는 비난과 비판을 구분하지 못함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를 말하면 비난이고, 자신이 남을 비난하는 짓은 정당한 비판이라고 한다.
이성이 마비된 결과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구분이 없어진다.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과연 우리사회가 도둑질에 관하여 불의와 악의 개념으로 철저히 비난 하는가 가 의문이다.
남의 이야기라도 자신의 상처와 치부와 연관이 있는 온전한 비판은 비난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댓글을 보면서 논쟁이 없는 우리 사회의 최대 피해자는 힘없는 여성과 어린 아이라고 생각한다.
비난은 ‘불의와 악’에게 던지는 불방망이고, 비판은 균형감을 잡아 주기 위한 애정의 표시다.
우리 사회는 어떤 일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이익과 불이익’을 먼저 따진다.
이는 원칙과 상식이 결여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권위주의만 해체 할 것일이 아니라 소통을 열고자 애를 쓰고 논쟁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구린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는 원칙과 상식을 거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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