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이 흔들지 않는다고? 엄청 흔들리는 중년.
공자는 40대의 나이를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미혹되지 않음, 또는 흔들리지 않음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인생에 있어서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중심이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린다. 가장 흔들리기 쉬운 나이라서 경계를 주기 위해서 ‘불혹’이라 한 것이다.
수신(修身)이에 이어 제가(齊家)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치국(治國)이나 평천하(平天下)는 범인의 영역이 아니라서 보통사람이라면 가정을 잘 돌보고 다스리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도 쉬운 일은 아니다.
30대는 자녀가 아직 어려 양육의 단계에 있으며, 50대 이상은 자녀가 성인이 되었거나 분가를 했기에 제가의 어려움이 덜하다. 예전 같으면 30대에 부모상을 치르게 되는데 요즈음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40대 이상까지 부모를 공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불혹의 나이는 아래로는 자녀들이 사춘기시기를 보내어 정신적인 면과 경제적인 것을 같이 부양하며 수평적인 아내의 관계 또한 중요한 시기이다. 이 나이의 아내들은 양육의 단계는 지나서 수고로움은 덜하지만 정체성 문제로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때다.
중년 위기의 원인
중년의 위기는 부부관계가 이완되고 느슨해지는데서 모든 원인이 있다.
아내 스스로 실력을 갖추거나 남편이 길러주지 못하면 모든 짐을 다 가장 혼자 지고 가야 한다. 엎친대 덮친다는 표현이 딱 맞다.
만혼 추세와 산업화로 오늘날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오래 전 농경사회에서는 사십대가 넘으면 일선에서 물러났다. 40을 넘어서면 이전과 달리 신체적으로 많이 허약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현대에는 사회생활을 가장 바쁘게 해야 할 나이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기계적으로 삶을 근근이 살아 갈 뿐이다.
따라서 현대의 40대는 공자의 시대 보다 훨씬 과중한 삶의 무게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중년의 돌연사도 이에 무관하지 않다.
취미 생활에 몰입하거나, 꾸준히 운동을 하는 일은 어느 정도 긴장감을 이완시켜주고 건강을 유지 시켜주는 면은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예전에 직장 상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폭삭 늙어도 좋으니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아이들은 성장해서 모두 시집 장가 다 갔으면 한다.’ 라고 했다. 참 서글픈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힘든 이유는 경제적인 활동으로 돈만 벌어 들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다. 이는 사실 기본적이지만 부수적인 것이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을 포기하여 가르침에 대한 깨우침의 희열을 아버지가 전혀 느끼지 못함이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힘이 든 가업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에서 부권의 진정한 권위가 세워지며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칭송 받을 일은 아니지만 삶을 영위하는 대는 훌륭한 일이며 일본인들은 이를 잘 간파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진전됨은 인류에게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인류의 죄악 됨은 이런 구조 변화에서 나누기 보다는 늘 힘 있는 자들의 양육강식의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들은 늘 강박적인 사고에서 벗어 날 수 없다. 혹시나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욕심을 내서 경험도 없는 사업을 벌여서 어려움을 당하는 일도 이런 강박증에서 오는 증세다.
자녀에게 집중해야 하는 중년
가족이란 구성원 중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어려운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되게 마련이다.
중년의 부부도 힘이 들지만, 사춘기의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당한다. 그런 자녀를 중심으로 가정이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관심과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일이다. 그저 학원으로 내몰고 먹이고, 재우는 일이 다 가 아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배려를 받지 못한 자녀의 문제는 어느 때고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이를 피할 길은 없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는 끊을 수 없는 천륜으로 맺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자녀를 내려 보내신 뜻을 잘 살펴야 한다.
자녀란 부모를 대로상에서 벌거벗겨서 망신을 줄 수 있으며, 결국엔 자신이 가져 갈 것이지만, 부모에게 영광의 왕관을 씌워 지기도 하는 존재다.
자녀를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빨리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제가(齊家)인 가정을 꾸리는 일이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것 같지만 아주 단순한 결론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사람을 남긴다.’는 단 한마디다.
어떤 집을 살까? 어떤 자동차를 살까? 다음 주말에는 어디를 갈까? 등등은 다 '사람을 남긴다.'는데 집중 되어야 한다. 그 외 것에 치중하면 부모 자신의 정욕을 따르는 짓이다.
사람이 인생의 종착역에 다 달으면 그동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 모두는 다 부질없는 것이 된다. 다만 자신의 자녀인 사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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