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주 전쯤에 바로 옆 단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 사건이 났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고등학생이라고 알았는데, 언론 보도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의아해 했다.
아이들이 자살을 한 경우는 그 가정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존립마저 심각하기에 대단히 큰 사건이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삶을 제공하지 못함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심각함은 없다.
아버지가 방송국에 다닌다고 해서 아이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는 가 했다. 만일 그렇다면 대한민국 언론의 패악함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자세히 알아 봤더니 지방대학에 다니는 2학년생 남자였다. 성인의 문제에 관하여 언론 보도를 재주 것 막는데 굳이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건의 개요는 아버지가 아들을 심하게 나무라자, 부모가 보는 앞에서 13층 베란다 밖으로 순식간에 몸을 던져 버린 것이다. 대게 이런 경우,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그랬다고 혀를 찰 수 있다.
순간!
사람이 사는 것은 순간의 연속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바로 다음 순간이 온다.
부모에게 참혹하고 자신에게 비극적인 이 사건은 순간을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할 명분이 계속 쌓여 온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나 어른이라도 인성이 바로서지 못한 사람에게 ‘순간을 참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들 하나 밖에 없는 가정에서 아버지가 방송국에서 잘나가는 직업인이라면 외동아들에게 주목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넉넉한 경제력으로 온 정성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쏟아 부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렸을 적에는 예체능으로 시작해서, 학교를 다니면서 부터는 성적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몰아 붙였을 것인데 결과는 지방대에 가게 됐다.
아내는 남편에게 체면이 서지 않고, 그동안 아들과 씨름을 하면서 힘이 다 빠진 것은 물론, 남편과 아들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까지 쌓여 왔다.
머리가 커버린 아들을 어찌하지는 못하고 아버지를 동원하거나, 남편이 있는데서 아들을 꾸지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아내와 어머니들의 생각과 행동을 정리 해 볼 필요가 있다.
가정은 권력의 구도로 이해를 해야 한다.
엄마들 중에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남편이 있는데서 아이들을 잘 혼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아이를 혼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서 절대 권력자인 남편에게 대항하고자 한다.
자신만이 아이와 의식을 교류하며 끼고 돌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정을 한다. 그러나 아들의 경우 사춘기를 전후로 통하지 않게 된다. 이르면 초등학교 5~6학 때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엄마로서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남편에게 훈육의 권한을 모두 넘겨야 한다. 그런데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대고, 그러함에도 놓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움이 아이와 가정을 망치게 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아들이 반항하고 저항하는 정도가 엄마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가게 되면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담스러워서 학원 등으로 뺑뺑이를 돌린다. 아이가 원한다면 그저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아무데다 보내기도 한다.
자녀는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 망치기도 한다.
아이는 엄마가 심리적으로 무너진 것을 간파하고 아버지의 제재가 들어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행동한다. 가정 안에서 아이를 잡아 줄 끈이 없어진 일이다.
이러다 대입을 보게 되는 쯤 해서 아들의 형편없는 실력을 보고 남편은 아이와 아내에게 “이 놈의 집구석” 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무얼 했냐고 질책을 하게 된다.
아내는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끼어서 이도저도 못하고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다. 좀 살만하다는 중년 여성 중에서 우울증에 빠지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고, 아들과 대항을 하게 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번 투신자살 사건이 그 예다.
엄마가 남편 앞에서 머리 큰 아들을 나무랄 때는 아주 주의를 기울어야한다. 아들의 반항 정도가 엄마의 권위를 넘게 유도하는 꾸중은 옆에 있는 남편을 광분하게 된다. 가장인 남편은 가정의 질서를 잡아야 하기에 더 큰 힘으로 아들을 제압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아내는 이러한 정황을 유도한 것이다. 그 결과 아들은 설자리가 없게 된다.
이런 가정이 주변에 널려 있어서 안타깝다.
그렇지 않고 아들을 완벽한 마마보이로 키운 성공(?)적인 엄마도 있다. 그 성공의 대가는 늙어서 천천히 아주 혹독하게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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