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파트 거품이 빠지면~

두 아들 아빠 2007. 4. 12. 22:05
일전에 프랑스 여성이 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인터넷에서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완전 실망이었다. 그 책에서 단 한 줄 써먹거나 감명을 받을 문구를 찾지 못했다.

이만하면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날일이다.


책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로 아파트문화의 원조 격인 프랑스인이 본 한국의 아파트문화 특성과 자국의 특성을 비교분석한 것이 있겠지 하며 끝까지 읽었지만 불행이도 없었다. 자국의 국민에게 참 희한한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소개한 정도였다.


단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게는 놀고먹는 다는 아파트경비원을 저임금으로 온갖 허드레 일을 시켜먹고 착취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책의 내용에는 없지만 프랑스와 우리 아파트 문화의 큰 차이점을 생각해 냈다.

프랑스의 아파트는 우리와 달리 투기의 방편으로 쓰여 지지 않았다는 중대한 사실이다.

이웃의 일본은 우리와 같이 투기 목적으로 쓰였다. 여기에 상관관계가 있다.


산업화가 촉진되면 인구 집중이 일어나고 주거문화가 변하게 된다. 이런 변화가 아파트문화다. 그런데 산업화에 이은 상업화로 자본을 소유하게 된 서민층은 자본을 이용하여 좀 더 많은 자본 축적을 추구하게 된다.


거대 자본가들은 서민의 자본을 털려면 투자라는 허울을 씌워서 부동산투기를 조장해야 한다. 이 둘이 만나서 이루어 낸 것이 부동산투기다.


전면적인 부동산 투기는 국가가 나서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투기 자금의 대부분은 은행돈을 빌려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나섰고 프랑스 정부는 해악을 알고 나서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애초에 근절했다.


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일본의 경우는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가를 따져 보면 안다. 기득권은 자국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일이 가장 쉬운 돈벌이다.


이제 ‘부동산’ 하면 ‘거품’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먼저 ‘거품’이란 단어의 정의부터 해야 한다. 거품이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거품이라고 하지 말고 ‘풍선’이나 에드벌루운이라 해야 맞다. 일부는 인위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으며 꺼지면 고무나 가죽이라도 남길 수 있다.


거품이 꺼지면서 최대 수익자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들이 거품을 조장해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이들과 뜻을 같이한 불의한 기득권이다.

대기업은 아주 적은 노력으로 생산설비의 갱신과 확대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부동산은 외국으로 가져 갈 수 없으며, 시세가 해외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약소국의 기득권층이 매력으로 느낀다.


고가의 토지는 허접한 주식의 가치를 정당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고가의 주식은 토지 가격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사이클을 즐기는 집단은 단연 기득권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기득권의 한 축이 된 언론들은 부동산투기를 부추이고 있었다.


강남의 30평 아파트가 유럽중세의 성 값에 맞먹게 된 이유는 투기와 경제성장이 같이 꾸준히 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조정 국면으로 가고 있는 시점에서 주가지수 상승은 아주 좋은 징조다.


거품경제의 결말은 가계부분에서 산업부분으로 부의 이전이 한꺼번에 진행된 일이다.

과거에는 이를 위해서는 각종 세금의 인상이 뒤 따랐다. 그 세금의 명목은 항상 ‘복지세’ 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이를 차단하고 나섰을 뿐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대학에서 경제학이나 사회학을 가르치는 거룩한 척 하는 교수님들이 말해야 하는데 모두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도 부동산투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문 따로 생활 따로 인 허접한 군상들이다.


(참고: 부유한 나라 가난한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