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현상

두 아들 아빠 2007. 7. 9. 11:41

신뢰가 부족한 여성 관계-

국회의원의원 보좌관은 연봉 6000만원 수준의 4급 보좌관 2명과 5급~9급 각 1명, 여기에 인턴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8명이 있다.

그런데 여성 국회의원 중에서 핵심보좌관을 여성으로 채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이 같은 여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그 이유로는 의원보좌관 중에는 남성 정치 지망생이 많다는 것과, 지금까지 여성국회의원은 호적상 여자지, 진정한 여성이 아니었던 면도 있다. 대한민국 국회라는 지극히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적인 마초집단이라서 남자 같은 여성만이 진출 할 수 있었다.

이젠 여성들이 사회전반에 걸쳐서 활발히 활동 하는 사회가 되었는데, 문제는 같은 여성끼리 불신을 넘어서 억압까지 한다는 것이다. 남성상사보다 여성상사가 더 까다롭게 굴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는 여성동료끼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우리사회에 오래 동안 만연한 남성중심사회의 왜곡된 구조에 기인한 면도 있고, 여성 자신들에게도 있다.

먼저 남성중심사회에서 왜곡된 구조를 살펴보면, 중학교까지는 그런대로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면서 점차적으로 성차별이 이루어지는데 고등교육기관 일수로 심해진다. 이는 재단과 가르치는 사람들의 고루하고 경직된 사고방식이 문제다.

사회에 진출하면 본격적인 성차별이 심화되는데, 남성은 집안의 가장이며 부양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입사와 승진에서 더 배려를 한다는 주장은 이젠 모순된 사고방식이다.

딸이 사회 활동을 하기 원하는 아버지나 아내가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기를 은근히 원하는 남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자기 영역에 있는 여성은 억압하려 한다. 이런 가증스러운 이중 구조를 깨야 할 사람은 남성 스스로다.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남성들의 은근한 원함과, 여성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도 함께 있다. 여성이 남성과 달리 사회 활동의 치명적인 제약은 출산과 육아다. 여성이 배려 받아야 할 부분을 애써 지우려는 남성들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하려는 악행이다.

맞벌이 부부가정을 살펴보면 젊은 층은 비교적 가사를 서로 잘 나누는데, 중년이상의 남성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 남성일수록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요즈음 여자들은 참 살기 좋다.’라고 한다.

가정에서 이런 억울함이 지니고 직장에 나오는 여성이 온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마음속에 담아 둔 억울함을 어디엔가는 쏟아 부어내야 한다. 이는 생존의 문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여성의 천부적인 역할인 ‘출산과 육아’와 후천적으로 주어진 ‘집안 살림’을 바르게 평가하지 않으려는 것은 권력자로써 자신의 권위를 더 올리려는 치사한 의도다. 그래서 여성 스스로도 집안 살림을 하찮게 취급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살림을 하는 당사자는 엄청 힘들다.

남성의 경제 활동은 권위에 왕관을 씌워주는 행위고, 여성의 경제활동은 생존의 급박함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은 아주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권위와 돈으로 여성을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다.

인류가 특별한 이유 없이 어려운 것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게는 가정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여성 자신의 문제도 있는데,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은 여성의 ‘사고가 감성에 치우친 것’과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물론 남성중에도 이런 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대게 이런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어렵게 한다.

감성에 치우친 면이야 여성 특유의 기질이라고 쳐도, 같은 여성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여성 자신이 독립적이지 못하다는데 기인한다. 그런 여성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같은 여성의 지위를 올리기보다는 내리 깎는 수가 많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중에 남편의 지위가 자기보다 못하면 열등감을 갖는 것은 ‘자기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사회적인 편견으로 자신이 아는 일이 하찮은 일이라면 부끄러움을 갖는다. ‘남편이 뭐하길 레...’ 라는 확인되지 않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가정과 연관 짓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는 경우가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경제활동은 가정을 이끌기 위한 한 방편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의식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직장에서 집 생각만 한다는 편견이 있다.

예를 들어서 업무책상에 가족사진을 붙였을 때, 남성과 여성의 경우를 달리 생각한다. 남성은 가족을 위해서 투철하기 일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여성의 경우는 집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직장 생활과 살림, 아이들 교육문제까지 덤터기를 씌우는 가정 구조는 여성의 심성을 뒤틀리게 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남편은 가사를 그저 ‘도와준다.’고 말하면 아내를 착취하는 것이다. 연령대로 보아서 맞벌이 부부 일 세대라고 할 수 있는 30세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최소한 철저히 ‘같이한다.’고 해야 맞다. 남자가 자신이 힘이 더 있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을 더 많이 해야 맞다.

항의 할 수 없는 관습은 여성의 심성을 더욱 뒤틀리게 한다. 그렇게 되면 ‘명분’과 ‘염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반응하기 쉽다. 따라서 정당한 경쟁보다는 실력 없는 여성끼리 야합을 하거나, 왕따 구조를 형성해서 같은 여성을 억압한다.

여성이 많이 근무하는 직장의 남자 상사는 이런 점을 두루 잘 파악하여 억울한 여성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워낙에 그런 여성을 가까이 두거나, 시끄러워진다고 외면을 한다.

여성이 같은 여성의 권익을 보호해야 여권은 신장한다.

박근혜 후보는 한명숙 국무총리 시절에 전효숙 헌법재판소 소장의 지명을 절차상의 문제로 거부한 일은 여성 대통령 탄생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짓이었다.

박 후보가 당대표 시절에 전효숙 재판관의 임명을 동의하고, 노대통령의 대 연정 제의 받아 들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절호의 찬스에 골포스트를 맞추면 그 게임은 질 확률이 높은데, 그 뿐 아니라 선수가 축구장 밖으로 나간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뭔가 이유 없이 잘 돌아가지 않고 억울함이 존재하는 것은 비정상을 바로 잡으려하지 않고 정상인냥 마냥 덧칠하고, 애를 쓰는 데 있다. 이를 피해 당사자인 여성 스스로가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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