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 땅에서 아버지로 살아가기 1.

두 아들 아빠 2007. 7. 18. 11:29
시인이 신달자씨는 국문학과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아버지란 주제로 글을 쓰게 한다고 한다. 주제를 듣고는 강의실이 잠시 술렁거리는데 이는 주제의 거부감일 것이다.


글을 쓴다는 일은 자기 성찰이며 먼저 자기 가족을 이해해야 하는데 가장인 아버지에 대한 정리가 먼저라고 설득하면 이내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글쓰기에 열중한다고 한다.


이들의 글을 보노라면 놀라울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어둡다는 사실이다.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들은 그래도 비교적 혜택을 받은 자들인데도 말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학생들 답게 차분히 글을 써나간다고 한다.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폭력적인 아버지, 술주정뱅이, 자신의 삶에 푹 빠져서 가족과 관계가 거의 없는 아버지, 어머니를 구타하는 아버지 등등 아버지의 존재가 애증의 덩어리라고 해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결론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강한 애착을 보인다고 한다.


경제가 발전해서 누리고 사는 것만큼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은 이 땅에 아버지들이다. 중년의 아버지들은 늘 불안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야 어찌 어찌해서 살아 왔지만 이 삶을 언제까지 유지 할 수 있을 까하는 두려움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세면대 거울 앞에 보인 초취한 중늙은이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 만만함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점점 커가는 아이들과 그와 반비례해서 늙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보면서 허탈하고 허망한 생각을 어찌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출근길에 젊은이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버스나 지하철에 오르기도 힘이 든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차를 끌고 가고 싶었는데 아내가 낮에 어디를 다녀와야 하는데 꼭 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웃으며 키를 건 내준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커피를 한 잔 타 마신다. 어제는 누구와 전화로 약속을 했는데 시간과 장소는 메모를 해서 아는데 그가 누군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기억력으로 다투지 말라고...


영업실적이 조금만 안 좋으면 짜증부터 내는 사장의 눈치를 보랴, 아침부터 시작한 회의는 끝날 줄 모른다. 이 사람들은 도무지 오늘 살다가 끝 날 사람처럼 끝없이 이야기를 한다.


점심시간이 다가 온다. 오늘은 또 무엇으로 점심 한끼를 때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와 같이 점심을 먹으려는 직원이 점점 없어지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권위의 벽으로 쌓기에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퇴근시간이 임박하면서 각자의 책상을 치우고 퇴근 준비를 한다. 요즈음 젊은 직원들은 퇴근 때 상사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텅 빈 사무실에서 홀로 앉아서 이것저것을 정리하면서 책상 안에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아들이 생일에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준 축하 카드다.

 

노란 꽃이 있는 겉장을 열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생신 축하해요”

일을 안 하면 자랑스럽지 않다는 뜻인가?


주량도 예전 같이 않다. 퇴근 후 빈속에 후배들이 따라주는 술을 연거푸 몇 잔 마셨을 때 집근처에 왔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구별을 못해서 핸드폰으로 아내를 불러 낸 적이 있다.


아내의 작은 어깨에 의지하여 집으로 돌아 올 때, 높낮이가 일정치 않은 아파트 입구의 여섯 개의 계단은 어찌 보면 내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 계단을 아내와 함께 오르기에 ‘천국의 계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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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바라보는 큰아이의 눈빛이 묘하다. 마치 나를 봐주는 듯하다. 내가 저만 했을 때를 떠 올려 보고 싶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인생의 낙이란 오직 달력의 빨간 날이 내일일 때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눈을 감는다. 이 눈이 다시 떴을 때 나는 꼬부랑 탱이 할배가 되어도 좋다. 그저 아이들이 다 커서 시집 장가를 다 갔으면 한다. 그걸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아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난 어떤 아버지로 남고 싶은가?

내가 죽은 뒤에 아들들이 날 생각하며 빙그레 웃는 일이 더 많았으면 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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