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스스로 지운 아버지의 권위

두 아들 아빠 2008. 1. 19. 11:07
  요즈음 한국 영화를 보면 부성부재(父性 不在)가 급격히 늘어났다. 영화 ‘밀양’이 대표적인 예인데, 가족은 있으되 아버지는 없다. 실제 가정 내에서도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퇴근해서나 쉬는 날이면 집에서 리모콘이나 이리저리 돌리며 마치 상처받은 사자 마냥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부재


 자녀에게 권위가 떨어진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아버지의 자녀 교육을 남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유아기는 아버지라는 신적 존재의 안정감 속에서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의 양육으로 키웠다면 자아가 생기는 사춘기부터는 아버지의 교육이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고 방관과 무관심속에서 자란 다면 자녀들은 부모가 되어서도 같은 전철을 밟을 일이다.


농경사회에서 아버지는 교육뿐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기술도 가르쳤다. 땅도 가업으로 물려주었으며, 어부의 경우는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갔고 때로는 전쟁에 나가 죽기도 했다. 이렇게 생의 전반을 책임지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다. 이에 비하여 현대의 아버지는 어떠한가! 오로지 밖에서 돈만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 했다.


서양에서나, 조선시대에도 자녀가 일정나이가 되면 부모를 떠나 훌륭한 스승에게 배우게 했다. 아버지는 그런 스승을 알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어머니 차지다. 그저 아버지는 자녀의 성적표만 확인하는 회사의 사장님처럼 결과만 보고 받는 사람이 되었다.


전선과 아군이 없는 나 홀로 장군


  자녀는 성장 하면서 점차적으로 어머니의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딸이라면 같은 여자인 엄마와 동료의식의 유대관계가 있지만, 아들은 엄마를 동료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거한 집안에서 편하게 지내려는 기 싸움만 할 뿐이다.


먹이고 입히는 일은 어머니가 하고 아버지는 가정 내 질서를 유지하는 최종 책임자다.

현명한 아버지라면 자녀와 직접적인 충돌은 피한다. 최고 권위자는 잔 싸움에 나서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기 아내를 내세워서 최전선을 유지시켜 일차적으로 거르는 일인데 최전방 부대에게는 가장 성능 좋은 무기를 지급하여 힘을 실어주고, 대우를 좋게 해서 사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자녀를 대 할 때 가장 성능 좋은 무기는 돈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경제권을 넘겨주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최고 권위자인 아버지는 자기와 동등한 차원으로 아내를 대해야 한다. 그게 사기를 올려주는 일이다. 이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부모세대는 그렇게 해 왔다.


최전선의 일부가 조금 밀린다 싶으면 적절한 시기에 요청을 받아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전선도 없이 아내와 자식을 모두 아래로 두고 혼자 싸우는 바보 아버지들이 많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권위가 없다고 불평한다. 아내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 자신이 집안에 최고 권력자 행사를 하려다 험한 꼴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양 받은 자가 더 힘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이양 받지 못한 나 홀로 권력을 지닌 아버지들은 외롭고 고독한 것이다. 아내와 함께 권력을 나누지 못하면 결국 혼자 지쳐 쓰러질 일이다. 그러면서 한결 같이 지르는 소리가 있다. “이 놈의 집구석!”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 권위다.


  가정에서 최고의 권위자는 아버지다. 권위자란 여러 가지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지 경제적 능력만이 최고는 아니다. 경제적 능력은 권위를 더 올려주는 한 방편일 뿐이며 그것보다 ‘아버지는 그 상징성만으로도 권위가 주어진 사람’이다. 그런데 일관성 없는 언행, 하잘 것 없는 것에 역정을 내고, 쓸데없는 데에 신경을 몰두하여 스스로 권위를 떨어트리고 있다.


내가 아는 60대가 넘은 분은 어머니께 맞을 때 아픔보다 아버지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단다. 그만큼 어머니와 아버지의 권위의 격은 분명히 달랐다. 그분의 말씀으론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께 혼 난 날은 아버지께서 훨씬 부드럽게 하신 걸 보면 아버지도 다 아시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단다.


초월자적 아버지


예전의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돈에 관하여 일절 말하지 않았다. 간혹 어머니가 말을 꺼내면 아이들 앞에서 그 입을 막았다. 돈은 여자가 관리하게 한 것은 남자는 돈에 관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아먹고 그동안의 명예가 단번에 떨어져 패가망신을 당하지 않게 하는 안전 장치였던 것이다. 그러함에도 오늘날의 아버지는 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돈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채워 질 수 없는 돈의 속성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줄 모르고 지껄이는 일이다.


아버지가 근검함을 솔선수범하면 자녀들은 따라간다.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살림을 꾸려 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들이 돈 욕심을 더 내고 있다.


어머니께는 현실감각을 익히고 아버지로부터는 현실 이외의 그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게 초월자적 아버지의 모습이다. 초월자적 아버지란 보이는 현상에 함몰되지 않는 뚝심과 혜안이 이어야 한다. 또한 자녀의 문제에 관하여 통찰하고 전략을 짤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능력이 모자라면 세상을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자기도 신뢰하지 않는 자기를 믿는다. 그게 어려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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