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의 권이상 감독과 작가 김정수 콤비가 만든 ‘쑥부쟁이’는 극중 내내 등장인물이 설정된 정체성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각자의 심리묘사도 뛰어났다.
한 시골의 노부부를 중심으로 세 아들 가정과 딸 가정의 갈등, 그 이웃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인데, 우리 농촌으로 시집 온 동남아 여인들의 애환도 단편적이나마 다루었다.
자식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가 주발을 집어 던져 어머니의 이마를 맞추는 장면은 너무도 리얼리티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화를 돋워서 일어 난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우리들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자식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나마 항거했던 것이다.
부모의 사건으로 형제는 서로를 탓하며 주먹질을 한다. 성경은 인류최초의 살인을 가인과 아벨이라는 형제간에 벌어진 것으로 가르침을 준다. 절대자에게 인정받기위해서 형이 동생을 살해하는 것인데, 반면에 어려서 말썽부린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심리 뒷면에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함을 늙어서도 까지 받으려는 처절함이다.
시골에서 호박꼬지를 말리는 할머니와 외국에서 랍스타를 즐기는 손자 세대 간에는 너무도 큰 문화적 세대차이가 있다. 대학교수인 큰 며느리는 외국에 가있는 자기 자식들과 사뭇 통하는 듯하지만 자기들 사이에도 큰 단절의 벽이 존재함을 모르고 있다. 반 양놈이 다된 아들이 나을 자식에 비하면 자신과 호박꼬지 시어머니 사이보다 더 큰 의식의 차이가 있을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이 남의 여자에게 정분을 준 일을 독기어린 표정으로 말하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쓸데없는 대에 집착한다는 듯이 끝없이 천진난만하게 웃어 대는 늙은 남자를 보고 이 땅에 한 많은 할머니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 까!
부모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에 눈물을 찍지만 실상을 뒤집어 보면 그 안에 부모의 잘못된 권력의 의지가 숨어있다. 늙은 부모는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다. 그게 암이던 뭐던 그저 자연사면 그만인 것이다. 극의 결과는 해피엔딩으로 얼버무려 처리했지만 이미 가족관계는 돌이 킬 수 없이 엉망이 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해택을 준 것은 그렇다 쳐도, 독립한 자식에게까지 재산으로 영향력을 끼치려하면 그런 부모의 모습에서 자식들은 의타심이 생겨서 자기 힘으로 뭔가를 이루려는 의지가 박약해지거나, 자기 주제를 모르고 살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아무리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자식이 있어서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재벌가 자식들의 재산분규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부모가 재산을 이용해서 자식들 간의 효도 경쟁심을 부추키려 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부모 스스로가 자식 앞에 인격자로 서기 보다는 재물에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다.
풍요에 대한 부정과 끝없는 욕망이 한 가정뿐 아니라 전체 가정을 어렵게 한다는 스토리 전개는 큰 무리가 없었으나, 극중에서 면장출신이 손끝이 문 들어 지도록 땅을 일구어서 많은 땅을 소유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동 떨어지는 설정이었다.
이 드라마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네 식구가 원수다.”라고 할 수 있다.
자식보다 자식 친구에게 더 믿음을 보여 준 아버지는 자기자식은 마냥 어리고 남의 자식은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잘 안다는 것만 하나로도 함부로 대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이웃에게는 진정한 어른으로 서면서 자기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한 아버지의 한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김수현과 김정수작가의 글을 리얼리티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최소한 김정수작가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은 몰락하고 늘 찌질거렸던 일용이내가 자주성가한 듯한 느낌은 나만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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