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동거와 결혼 그리고 이혼

두 아들 아빠 2008. 2. 13. 15:25
  주문 형 글은 처음 써본다. 닉네임 '유희'님이 위 제목을 주제로 글을 한번 부탁한다면서 “싫다면 어쩔 수 없고요” 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좀 거슬렸을 것인데 오히려 그 뒷말에 묘하게 끌려 글을 쓴다.


‘동거 - 결혼 - 이혼’ 주문된 제목이 마치 순서처럼 정연하게 나열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 글을 부탁한 분이 이 과정을 겪었거나 그런 과정 중에 있을 수 있고, 아님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해 본다. 요즈음 남 사는데 관심을 두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각설하고 -


동거

남, 녀간의 결혼을 분업과 경제 효율적인 가치로 따지자면 동거만큼 이상적인 관계는 없다.

외국이 아니라도 기숙사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객지에 나온 유학생 남녀가 살림 비를 줄인다며 일정기간 동안 동거하는 예가 있다. 여러 사람을 동원 할 필요 없고, 누구에게 딱히 허락 받을 일도 없는 동거관계는 살다가 싫어지면 시새말로 쿨하게 해어지면 그만이기에 시작부터 부담 없고 나만 집착을 가지지 않으면 뒤끝도 말끔하다.


처음엔 대등한 감정이었는지 모르지만 남녀가 살을 섞고 생활을 함께 하다보면 또 다른 감성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처음 감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도망가려는 쪽과 달라붙으려는 쪽이 생기기 된다. 도망가려는 쪽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확실한 대안이 있으면 모르나 그렇지 못하면 동거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깨진다. 그럼 다른 한 쪽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이게 동거의 결말이다.


결혼

결혼의 모든 것을 짧은 글로 다 표현 할 수는 없고 아주 기본적인 의미만을 챙기자면


1. 결혼은 동거처럼 역할분담을 기본으로 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계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서로가 덜 힘이 들어서 그렇지 고착된 것은 아니다. 부부는 한 몸이며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2. 결혼을 마치 신분상승의 마지막 기회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신분의 변화는 맞지만 급격한 상승은 될 수 없다. 만일 신분상승이 됐다면 그 대가를 반듯이 치러야 한다. 인기 여배우가 최고의 기업가 집안에 시집가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다 야밤에 도망쳐 나왔듯이 말이다.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무시하면 안 된다.


3. 남녀 각기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가정을 이룬다는 의미의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신분 변화다. 인격체로서 변화이며 확장된 사랑의 변화다.


4.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인간으로서 최고의 생산성과 자기 성찰이다. 자식이 부모의 모난 점을 깎아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세운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고의 생산성과 양육의 노고가 남들도 다하는 것이라고 별 가치 없는 듯이 외면되고 자신의 모난 부분으로 자식을 깎으려고 들어서 인생이 고달 퍼지는 것이다.


5.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 독립을 할쯤에는 부모들은 망각 상태에 빠지는가 보다. 자기들은 멋대로 해 놓고 자기 자식은 끝까지 주장하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최초의 이웃은 독립한 자녀가정이다. 그래서 부모가정과 자녀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이웃이어야 하는데 정말 가장 친한 이웃인가가 문제다. 혹 원수같이 지내지는 않는가!

성경에서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옆집에 잘 생긴 개똥이 엄마를 사랑하라는 줄 아는데 먼저 자기 자녀가정의 사랑을 말한다.


6. 결혼 상대는 그동안 자기가 만들어 온 ‘이상형’이라는 것이 작용하여 선택하게 된다. 만들어 온 이상형이 잘못됐다면 아무리 신중히 골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최종 선택만 탓한다. 선택 이전에 생각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살피지 못한다.


이혼 

남의 이혼에 관하여는 생각은 자유롭게 할지라도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남이 알지 못하는 각자의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인데, 하지만 이혼하는 사람들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모두가 내 탓은 아니고 상대방 때문이라고 한다. 간통을 저지른 사람이 상대방을 탓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혼의 본질은 자기 정욕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자기 아상을 최고치로 올려놓았을 때 벌어지는 사태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억울한 일이다. 아니 그렇다고 머리를 흔들며 주문을 외는 것이다.


‘거룩함’이라는 말을 종교적인 의미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이야 말로 거룩한 존재다. 따라서 이혼이 허용되는 것은 가정 안에 거룩함이 깨졌을 때뿐이다. 지켜야 할 가치를 상실하면 의미가 없고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만 이혼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이혼이란 가정생활의 영위를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거나, 고의적으로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사람을 나머지 가족이 내치는 행위다. 그런 자에게 자녀교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


재혼

내친김에 재혼까지 가보자!

배우자 사별하여 한 재혼과 이혼 후에 재혼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는 종교적인 문제라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초혼 실패율의 3배가 넘는 게 재혼이다. 앞서 살폈지만 자기 이상형의 잘못을 고치치 않는 한 재혼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 할 수 없다. 서로가 상처를 입고 어려움을 당했기에 잘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잘못은 없다는 억울함은 언제든지 또 분노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서로 어린 자녀가 있는 재혼 자들은 아주 조심할 것이 있다. 가장 나은 것은 남성은 딸, 여성은 아들이 있는 경우다. 그 반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걸 미리 알고 단단히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자녀의 문제를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 때문에 갈라서야 한다.


내가 아는 여성 블로거 중에서 재혼하여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 있다. 그분은 아들이 있는 경우인데 새 아빠가 잘 지켜봐주는 것 같다. 재혼을 한 사람은 아주 다른 특별한 은혜를 받은 일이다. 새 삶을 열어 주고 다시 기회를 받은 것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