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움켜쥐는 진보와 베푸는 진보

두 아들 아빠 2008. 2. 27. 10:56
※제 블로그와 동시 게재합니다. 쓰고 보니 두아들네가 잘 쓰는 '찌질한'이란 말을 많이 썼네요.

이번 선거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 유연한 진보가 뭔지, FTA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지 등에 대해 확신을 못하던 중 간단한 데서 답을 찾았다. 그것은 과거지향적 진보 개념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진보 이념을 세우자는 데서 찾아졌다.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계몽사상이 무엇인가? 인간이 더불어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답을 철저히 이성에서 찾자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미래지향적 진보란 흔한 말로 우익의 방법으로 더불어 잘 사는 이념을 실천하면 된다고 본다.

우익의 방법이라고 하면 또 복잡한 고민에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그게 우익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즉 국제적으로 강대국 틈바구니에 존재하고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양극화가 심화된 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연한 진보라는 말이 필요하게 된다. 이 땅 위에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정책 대안은 무엇인가? 지금 시행하는 정책 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해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민감한 파병부터 생각해 보자. 결과적인 얘기지만 사고 사망 한 건 이외에 전사자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파병은 했지만 패권적 국제질서 내에서 최대한 실용적으로 대처했다고 본다. 우리가 식민지냐? 베트남도 모자라 또 용병이냐? 이런 주장에서 한 발자욱도 못 나가는 것을 나는 찌질한 진보라고 부른다.

FTA 도 마찬가지다. 민족경제의 이념에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하는 것은 찌질한 진보다. 박현채가 힘써 세운 민족경제론의 실천은 이미 북한에서 검증이 끝났다고 본다. 그것이 70년대까지는 잘 맞아 들어가서 북한이 남한을 이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쨋든 국부를 키우고 그 부작용은 복지 지출 증대로 해결할 일이다.


있는 조직 가지고 어떻게 하든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제까지 민주노동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찌질한 진보의 전형이요 웅켜쥐려는 진보 이외에 다름 아니다. 왜 자기들은 거대한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그나마 쪼개지느냐 말이다.  자기들이 할 일을 아니 하고 노무현을 씹는 데 딴나라당과 짝짜궁을 한 업보라고 본다.

내가 아는 어떤 치과 의사 부부가 네티즌 개혁당에 수천만원을 쾌척했다. 또 한 분은 프랑스에서 날아와 시사 서프라이즈 디자인을 해 주고 당의 건설에 대한 조언을 해 주고 가면서 언제든지 부르라고 했다.

이러한 진보주의자가 되자. 미국으로 보면 조지 소로스와 빌 게이츠와 오프라 윈프리 같은 진보가 되자는 얘기다.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고 여분의 것을, 그것이 자산이든 실력이든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건설에 과감히 바치자는 것이다. 있는 것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진보는 찌질한 진보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불편하면, 아니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없다는 건 입증됐다. 그 마당에서 성공하고 나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베풀면서 살자는 것이다. 나는 입만 열면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는 노무현 유시민에게서 그걸 본다. 그것이 바로 유연한 진보요 베푸는 진보라고 생각한다.

진보를 이렇게 유연하게 본다면 진보운동에 민노당뿐 아니라 민주당, 심지어는 딴나라당까지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 주변에 보면 딴나라당은 뿔난 도깨비가 아니다. 내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도 있고 내 피붙이 가운데도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관용과 포용 없는 교조주의적이고도 고집스런 진보로 딴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찌질한 진보는 저리 가라! 중원 게임에서 항상 지면서 가진 것을 웅켜지기만 하는 찌질한 진보, 그래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진보 때문에 사이비 성공과 반칙 성공으로 콧대 높이 들고 다니는 인간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든다는 미명하에 집권을 한 것이다. 나는 베푸는 진보에 올인 하려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