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댁은 김장 했수!

두 아들 아빠 2008. 11. 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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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결혼 후 김장을 담아 본적이 없는데, 지난 토요일과 주일에 아내와 나는 김장을 했다.

 그리고 이곳 공주에 내려 온지 딱 3개월이 되는 11월 20일 목요일 밤, 아내는 이층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왼쪽 발목과 발이 부어올랐다.

 

큰 형님댁과 처가에서 김장을 담아 보내주셨는데, 인천이 고향이신 큰 형수님과 형님의 서울식이 혼합된 깔끔한 맛의 김치와 육젓이 넉넉히 들어간 맛깔스런 남도의 김치를 겨우내 함께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김장을 처음하면서 욕심을 냈는데, 동치미를 항아리에 담았다. 보쌈김치도 담아 보자고 했다가 아내가 눈에 쌍심지를 키고 처다 보아서 눈을 아래로 내렸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까지는 우리 5남매는 김장을 담았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배추 100포기, 무 200개가 기본이었다. 중학교 이후부터 내 임무는 마당에 독 묻을 땅을 파는 일이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추웠던지... 쌀 두 가마니가 들어가는 쌀통에 쌀을 가득 담고, 연탄 200백장, 그리고 아버지가 직접 뜨신 청국장과 부모님 고향인 서천에서 올라 온 김 할머니가 가을 내 말린 김 서너 톳을 사면 우리 집 겨울나기 준비는 끝이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늘 마음속으로 준비한 것은 뼈가 부러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려는 담력이다. 그리고 이사를 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를 눈여겨 봐 두었다가 아내에게도 일러둔다. 공주에 이사 와서도 시장 입구에 있는 정형외과를 봐 두었다.

 

  아침 일찍 아내를 부축해서 그 정형외과의원에 갔다. X레이 사진 결과 어지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 곳이 부러졌다고 한다.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 공주의료원이나 공주 현대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병원에 온 이곳저곳 뼈가 다친 아줌마, 할머니들이 서로 서로 한마디씩 하신다.

“댁은 김장 했수!”

다친 다리에 반 기부를 하고 소견서를 들고 의원을 나왔다.

 

공주의료원에서 CT 촬영을 했는데 뼈가 으스러졌다고 한다. 뼈 이식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소견서와 CT 촬영 CD를 가지고 나왔다. 입원 준비를 하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장원에서 머리를 감았는데 미장원 아줌마가 “언니 김장했어요?” 라고 한다. 미장원을 나와 오랜 만에 아내를 업었다.

 

아내의 속옷과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대전에 있는 건양대학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아내는 고통스러워했다. 차라리 내 뼈가 부러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들은 준비했는데 아내는 준비하지 않아서 그런지, 내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보다는 아내는 나와 한 몸 일 찐데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외래에서 진찰을 받고 각종 검사를 받아 입원실에 들어왔다. 무주에서 사신다는 할머니가 먼저 와 계셨는데 김장을 하려고 밭에서 무를 뽑다가 밀려 내려 온 리어카에 치어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하신다. 말하기도 힘든 할머니께서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이...

“댁은 김장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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