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감동 없는 삶

두 아들 아빠 2009. 4. 11. 11:11

예전에 일관계로 만난 목사님이 있었는데 소위 스카이 대학의 부학장도 지내신 아직 현 교수직에 있는 분입니다. 작지만 강력한(?)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이분이 일을 잘해 달라며 주신 자신의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그 무엇인가에 감동을 받은 적이 없다면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보면 된다.”

 

사람은 감동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인데 현대인들은 감동에 무감각합니다. 그 이유는 의식주가 안정되면서 더욱 심화 된 듯합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었고 급기야는 술과 담배, 그것도 시들해서 마약류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담임 목사를 맡은 교회교인은 우리 사회에 내로라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우글(?)거리는 교회입니다. 그들을 목회 하면서 느낀 점을 책으로 대신 말하지 않았나 유추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설교를 해도 그저 무덤덤한 표정들에서 말입니다.

 

감동이란 대단한 이성적 깨우침에도 받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일깨움에도 받으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너끈히 해낸 사람에게도 받습니다. 자기 부족감을 모르는 사람은 좀처럼 감동을 받기 어렵습니다. 또한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안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자연 현상이나 기계적 인간관계로 전락한 가족에서도 감동은 매일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극적인 것에 매달리는, 감동에 무감각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그저 허망한 눈으로 바라 볼 뿐입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힘이 들어도 잘 참아내는 이유는 아이를 통해서 매일 감동을 받기 때문입니다.

 

시인만큼 감동에 예민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침에는 분명히 해가 뜨고, 밤에는 어두워지며 그 어두워진 밤하늘을 달빛이, 때로는 별빛이 밝혀 준다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을 가지고도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시를 생산합니다. 시인이란 모든 사물과 인관관계의 작은 것에서도 감동을 받아 이를 시 언어로 풀어 감동에 무감각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감동 전도사’입니다.

 

시인이 배가 고파도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삶 자체가 감동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감동을 찾아다니며 캐내는 심마니입니다. 감동에 무감각한 사람은 이미 금수의 단계에 가까워진 일입니다. 그래서 그 교수 목사님은 이를 경계하고 감동 없는 삶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한 것 같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에서 찾아낸 시를 소개합니다. 그가 젊은 20대에 쓴 시를 불혹의 나이에 읽고 감동이 없다면 자신의 감동 지수를 한탄해야 합니다.

 

별을 헤는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도 바람에 별이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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