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광 노름하는 김지하

두 아들 아빠 2009. 5. 21. 16:46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교과서를 받아 왔기에 맨 앞에 있던 국어책을 무심코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가 있었습니다. 시의 제목도, 시구도 읽어 보기 전에 그의 글과 이름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자체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그의 시가 우리의 다음세대까지 알려지게 된 일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 던 70년대 국어 교과서에는 이항령의 ‘깨어진 그릇’과 같은 친일파의 글이 버젓이 있었습니다. 김지하(목포, 41년생)가 이명박(오사카, 41년생)을 끼고 도는 황석영(만주,43년)을 두둔하였다기에 무슨 시가 있었는지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새봄

                                   김지하

 

벚꽃 지는 걸 보니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이런 시에 애들이 이렇게 각색해 놓았군요.

 

삼광을 싸는 걸 보니

 

일광이 좋아

 

일광을 좋아하다 보니

 

삼광마저 좋아

 

발칙한 아이들이 그의 정신세계를 미리 파악했나 봅니다.

이제 똥광 마저 좋은가 봅니다.

 

불교의 윤회와 ‘너도 좋고 저도 좋다.’는 황희의 사상을 집어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수학적 풀이를 해보면, 지는 벚꽃 < 푸른 솔, 푸른 솔 = 벚꽃입니다. 따라서 벚꽃은 좋은데 ‘지는 벚꽃’은 싫다는 게 그의 속내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도 만개를 원하는 속물근성이 가득했습니다.

 

김지하 같은 분들이 군사독재와 싸우고 핍박받았기에 우리 사회는 이만큼 진보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되먹지도 못한 ‘알타이연합’ 논을 가지고 문민독재 이명박에게 붙어먹으려는 황석영을 두둔하다니요!

‘알타이연합’의 핵심인 몽골 벌판에서 삽질하자는 것이나 대운하 삽질이나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이런 황석영에게 작가의 상상력은 작품에서나 나와야 한다고 권면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지하는 황씨에 대한 변명으로 작가는 좌, 우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죠!

작가 뿐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상의 자유는 작가만의 특권이 아닙니다. 

이제 좌, 우 이데올로기 놀음은 남한에서만 하는 짓거리입니다.

작가가 주둥이의 자유(김지하의 표현)를 얻었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며, 사상의 자유를 즐길 수 있다고 이리저리 붙어먹으라는 것이 아니지요. 두 사람만 더 채우면 그의 시 제목인 오적(五敵)이 되겠죠! 나머지 두 사람이 기대 됩니다.

 

왜 세 사람의 태생과 생년을 괄호 안에 적었냐면 한사람은 일본, 한사람은 만주에서 태어 나 광기의 시대를 산 40년대 생들입니다. 오로지 김지하만 목포토종입니다.

 

광기의 시대를 살았지만 집단 자수성가한 40년생들은 이제 역사의 장에서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김지하는 같은 세대와 다른 길을 걸었지만 늙그막에는 어쩔 수가 없는 가 봅니다. 그가 마지막에 좋아하던 일광, 삼광, 팔광을 버리고 똥광을 잡았습니다. 그걸 부여 잡고 역사의 쓰나미에 한꺼번에 쓸려 나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