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우리 교육의 문제

두 아들 아빠 2009. 12. 23. 10:31

조선시대에 서당도 그렇지만 향교나 서원은 아무나 갈 수 없었다. 양반의 자제나 돈푼께나 있는 자식들만 갈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을 통한 신분적 차별을 확실하게 했다.

 

아래 민속화가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그림을 보면 벼루가 훈장의 오른쪽에 있고 아이들은 없는 걸 보면 주로 읽기 위주와 뜻 풀이로 가르쳤던 것 같다. 또 좌측과 우측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신분이 다르다. 좌측은 평민, 우측은 양반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혼나고 있는 아이는 좌측의 평민의 자식 같다.

 

상투를 틀고 갓를 쓴 이는 혼인을 한 학생이며 양반의 자식들이다. 이들은 다들 호쾌하게 웃는데 같은 서민의 자식들은 다 그렇지는 않다. 입을 손으로 가리거나 무표정한 아이가 있다. 훈장 면전에서 울지 못하고 뒤돌아 눈물을 닦는데 훈장의 표정은 안스러움 그 자체다. 그런데 훈장의 눈동자는 벌을 준 아이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다.  

 

좀 심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의 교육학자 수준이 아닌가 싶다. 교육에 관한 다들 나름의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한 사회적 대안은 아니다. 그만큼 교육은 어렵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농사꾼인 부모는 자녀의 교육의 전반을 감당 할 수 있었다. 삶의 지혜뿐 아니라 농사 기술을 가르쳐 먹고 사는 문제까지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학문을 더 하려면 부모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우리의 경우 서당이고 향교다.

 

당시의 공교육인 항교는 임진왜란 이후 중앙의 지원이 어려워지자, 현재의 사립학교나 학원 같은 서원이 각 지방에 생겨났다. 서원의 난립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자 대원군은 전국에 47개의 서원을 남기고 철패시켰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역사가들은 대원군의 업적으로 평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란 서원철패가 대원군의 중앙집권을 강화 하기 위함으로 사립학교의 효능을 죽여 버렸다는 지적이다.

 

향교가 있던 곳을 교동이라고 했는데 동 이름으로 검색하는 우편번호 찾기에서 '교동'을 치면 엄청난 지역이 쏟아져 나온다. 서원이 있던 곳은 달리 부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역시 예나 제나 공교육의 힘은 막강했다고 본다.

 

부모가 가르 칠 수 없어서 보낸 곳이 학교인데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학교에 부모와 학생이 만족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사교육이 창궐하게 되었다. 따라서 학교의 역활이 상당히 위측된 것이 바로 우리교육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부모가 뼈빠지게 돈 벌어서 국가에 세금내고 학교에 학비 대며 자녀를 맡겼는데 그 학교가 답이 없다면 부모로써는 암담할 뿐이다. 더구나 학생이 학교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면 더 다닐 필요가 없다. 다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보내고, 다닐 뿐이다.

 

물론 학교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사회적으로 과도한 경쟁 의식을 불어 넣고 여기에 부모의 욕심, 등이 한데 엉켜있다. 못배운 자는 곧 가난이 닥치고 사람 취급까지 받지 못하며 이는 대를 이어갈 확율이 높다. 이게 대한민국 부모들의 진정한 두려움이 아닐까 한다.

 

현재는 고등교육이나 대학까지 대중화가 되었다. 이틈에도 기득권들은 교육을 통한 차별화를 끊임 없이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맹목적으로 모두가 따라가고 있다. 여기에 숨가빠지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과 그 자식들이다.

 

공교육이란 국가주도형으로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기득권이 된 세력들은 자기들 유리한 방향으로 공교육 흔들기를 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어려운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