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자식에게 살해당한 부모 이해

두 아들 아빠 2009. 12. 29. 19:59

이번 사건은 비교적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가정에서 일어났기에 사회적으로 충격이 더 크다. 가정은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란 존재는 선출에 의해 오른 자리도 아니고 평생 견제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다.

 

대개 남자 나이 40을 넘으면 심리적 치유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20대에는 선택과 사회적 적응에 바쁘고, 30대는 생산성을 올리는데 몰두해서 자신의 성장과정에서의 상처가 들어 나지 않고 있다가 사회나 가정에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는 중년의 시기에 표출 된다. 또한 그동안 살아 온 삶 중에서 비굴이나 굴욕을 참아 온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가 들어 나기도 한다. 그래서 공자는 이 시기를 불혹이라고 했다.

 

에릭슨은 중년기를 ‘생산성 대 침체성’이라고 보았다. ‘중년의 부부는 친밀감을 형성해야 하며 그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관계를 넘어서 확대되어야 한다고 했다. 중년의 생산성은 자녀를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넓게는 다른 사람들이나 그들의 다음 세대를 위해 일하거나 그들에게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데 기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고 했다

 

중년의 시기에 아버지는 가정에서 맞부딪쳐야 존재가 있다. 바로 사춘기가 된 아들이다. 이번 사건의 가정은 아버지가 51세, 아들이 24세인데 대게 남자의 경우 15세 전 후로 사춘기가 온다고 볼 때, 그의 아버지는 중년을 막 넘은 42세였다. 아마도 이 시기에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을 정황이 크다.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관대함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그 피해는 아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부모란 욕하면서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성격과 유사한 아들은 어렸을 적에는 비교적 친밀감이 형성되지만 성장을 하면서 크게 부딪히게 된다. 서로가 상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격이 확연하게 다른 아버지와 아들도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그게 큰 아들인 경우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는 차분한 스타일인데 아들은 활동적인 경우는 아버지로부터 늘 핀잔을 받고 자랄 수 있다. 그와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와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를 삭히고 극복하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온전한 부모 노릇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랑한다는 자식에게 자신의 의식과는 다르게 상처가 증폭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년의 아버지는 치유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한 가정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물질추구에 몰두하고 경쟁이 심한 이유도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 가정에서 이번 일이 일어나서 충격이 더 하지만 사회의 의의가 없고 불의함이 판을 친다면 연약한 가정은 어쩔 수가 없다.

 

가정 폭력을 집안 일로 치부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폭력은 분명한 범죄행위다. 정신적 문제나 정황을 따지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다. 사회와 국가가 가정 폭력에 방관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이런 사건은 언제든지 또 일어 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인이 된 자녀와 함께 살면, 부모와 자녀는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철저한 계약 관계에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버지는 아들이 감당하지 못할 요구와 이로 인한 압박으로 불화가 날 수도 있고 평생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마마보이가 될 수 있다. 자식을 마마보이로 키워서 이런 일은 절대 없으라고 장담하며 안심하는 부모들도 결코 만만치 않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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