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두 아들 아빠 2010. 7. 31. 15:01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 가까이 살았더니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기에, 맹자 어머니가 집을 시전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내므로, 다시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켰다는 것으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음을 이르는 말.

 

이런 해석도 있다. 묘지 근처로 이사 와서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다음에 시장에서 악다구니식의 치열한 인간사회를 일부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학문의 길을 걷게 했다는 월남 뽕 같은 해석 말이다.

 

먼저 세 번의 이사인가? 에 대한 것을 살펴보면, 묘지 - 시장(1번 이사) - 글방(2번 이사)에  이어서 두 번의 이사뿐이다. 삼천(三遷)이 맞는다면 맹자 아버지가 죽은 지역에서 묘지 근처로 이사했을 경우가 다분하다. 맹자의 아버지는 맹자가 어렸을 적에 돌아 가셨다고 하니 더 그러하다.

 

짐작컨대 맹자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산 지역에 물려 줄 땅이나 마땅한 경제적 근거가 없었던 같다. 그러니 아버지가 죽자마자 어린 맹자를 대리고 이사를 한 일이다. 당시에 살던 곳을 떠난 다는 것은 지금의 이민보다도 더 어려웠을 일이다.

 

다음으로, 처음부터 글방근처로 이사 가지 왜 “무조건 이사부터 하고 살다가 여기가 아닌 겨벼!” 식으로 했냐는 질책이다. 맹모삼천지교를 맹자에게만 핵심을 맞추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지아비 없이 혼자 자식을 키워야 했던 맹자 어머니의 삶은 결코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다.

 

맹자는 기원 전 300여년 전의 사람으로 당시엔 철저한 남성중심사회와 농업중심경제 사회였다. 그런 시대에 힘을 써야할 남편을 일직 여원 일은 가계경제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묘지근처로 이사 와서 허드렛일을 도우고 차례나 제사 밥을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다음에 시장으로 이사 온 것은 맹모가 장사를 하기 위해서다. 거기서 돈을 좀 모아서 드디어 글방 근처로 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맹모삼천지교가 요즈음 '위장전입'의 발판이 될 일은 아닌 이유는, 맹자 어머니의 처절한 삶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월남 더위를 먹은 것 같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