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

두 아들 아빠 2011. 10. 9. 08:39

 

                                  


 ‘아들아, 너에게 이 책을 주마’라주제를 보고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옴이 있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대신에 아들들이 많이 커 주었으니 억울해 할 일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두 아들에게 뭔가 남겨주고 가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들 때도 있다. 어찌 한권의 책이 세상과 인생살이를 다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아들들이 읽지 않은 책 중에서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나중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이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고백부터 하자면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강의록을 엮어 놓아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일일이 세어 보지 않았지만 저자가 인용한 책은 엄청나게 많으며 소개된 사상가와 역사가 또한 그렇다. 책과 책, 사상과 사상의 연결과 그 사이에 자신의 의견을 넣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간 부분까지가 더욱 그랬는데 후반부인 ‘진보로서의 역사’ 부분에서는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핵심을 잘 정리한 요약이 경이롭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읽기를 수차례 하여 책이 분리될 정도로 읽었다. 고생한 만큼 얻을 게 많은 책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며 단숨에 완전 정복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읽기를 권한다.


 널리 알려진 고전이라는 책들은 배움이 큰 사상가들이 적어도 불혹을 넘겨 삶의 연륜까지 더한 통찰력으로 썼기에 젊은이들이 쉽게 깨닫기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마냥 미루거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책에서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확 다가왔다면 그 책은 값어치를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역사에 관한 주옥같은 문구가 넘쳐나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도, 글을 직업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늘 가까이 하고 읽을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


역사의 중요성을 한마디로 하자면 ‘사람이 현재와 미래를 보는 눈은 역사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포괄적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 2장 사화와 개인,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장 진보로서의 역사,  6장 지평선의 확대로 구성 되어 있다.


각장을 아주 간략하게 소개 하자면, 1장은 역사가로서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크로체(1866~1952. 이탈리아 철학자, 역사가)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역설적으로 선언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중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할 가치 판단을 위해서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첫 번째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2장 사회와 개인은 역사 속에서의 사회와 개인을 설명하고 있는데 역사가 위인들에 의한 전기라는 오해에 대해서 “하인은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신사는 세상사에 관해서 토론한다.” 는 빅토리아 시대의 격언을 통해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역사의 이중적 기능이라고 하며 역사는 현재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킨다고 했다.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이라는 장은 역사와 과학, 신학과 역사의 상관관계와 도덕적 관점에서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한 역사가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질문에 역사란 ‘사람 간의 관계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는데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가 그런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권할 만한 독서방법은 아니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읽기 어렵다면 5장 진보로서의 역사부터 읽었으면 한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함몰되기 전에 적어도 ‘진보란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면 이 장을 탐독했으면 한다.

 

6장 지평선의 확대에서는 앞선 장들을 정리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현재 우리사회는 영어몰입교육을 주창하고 있지만 영어권 국가의 메카인 영국 출신 저자는, 영어사용권 세계가 과거 400년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였음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사를 중심으로 그 밖의 모든 역사를 주변적으로 하는 부당한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대학교의 의무라고 했다. 또한 일류 대학이라는 데서 영어 이외에 다른 근대 언어의 적절한 지식이 없이 학위시험 응시자에게 역사학 전공의 우등학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역사학이란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편견을 끄집어내어 살피는, 고단하지만 의미 있는 학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사십이 훌쩍 넘어 이 책을 읽었지만 대학초년생 때 읽고 지천명의 나이에 다시 읽었다는 유시민씨의 <청춘의 독서>라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 책에 대한 글이 있다. 독후감을 쓴 관점은 전혀 다르지만 이 글의 부족함을 메워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역사를 배워서 뭐하냐는 식의 근본적인 회의를 가진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맺는다. 역사는 아버지가 살아 온 길이고 ‘내’가 살아갈 미래이며 적어도 자기 인생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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