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해방일기 1

두 아들 아빠 2011. 5. 22. 16:48

 

 

 

 


역사학자는 편견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자신만의 성향이나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점에 서야 한다.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중간 지점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 쉽지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기 어렵다. 그런 사람이 있다. 부친도 그랬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오랜 방황과 그로 인한 고초를 겪으면서 기어이 증간지대에 자신을 세웠다.


아버지가 6.25 전쟁 전후로 쓴 읽기인 ‘역사 앞에서’라는 육필 원고를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그것도 역사학 교수가 돼서야 어머니로부터 받아 보았다. 그만큼 반공지상주의 시대에 부친의 일기에는 위험함이 있었다. 공산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색분자라고 했을 일이다.


'남자의 인생이란 아버지의 투사된 삶이다.'이라는 프로이드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아버지는 지울 수 없는 존재다. 아버지가 국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서울대 역사학 교수였다는 것만 알고 있다가 육필 일기를 받아 보았을 때의 충격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장장이 설렘과 뜨거운 눈물... 바울은 다마스커스의 뜨거운 사막 위에서 예수를 만났지만 김기협은 아버지의 육필 일기를 통해 역사를 만났으리라. 김성칠선생은 좌도 우도 아닌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6.25를 조명했다.


그의 아들인 김기협선생은 아버지의 일기 뒤편을 택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해방일기다. 해방 후 6.25 전쟁까지 5년은 한반도 전체가 미래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혼돈과 혼란의 시기였다. 해방 후 북은 소련군, 남은 미군이 접수하게 되었고 각자의 정부를 수립했다. 좁은 땅에서 이데올로기의 극열한 대치는 결국 피를 보아야 했다.


저자는 우리사회의 최고 엘리트 역사학자이지만 스스로 낮은 자세를 취해 중도의 위치에 섰다.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 서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러했기에 이 책의 진가는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두 열권의 책으로 엮어지는데 이번에 해방 이후 3개월분인 제 1권이 나왔다. 책의 부제는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인데, 일본과 전쟁에서 숭리 한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어떤 존재 일까?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 온 대단한 단일민족으로 여겼을까! 이런 점에서 소련은 같은 대륙의 끝자락에 있었던 한반도를 태평양 건너의 미국보다는 좀 더 이해했다고 본다. 미국이 전형적인 군인성향의 하지 중장을 점령군으로 보낸 것을 보면 남한에서 정치력은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특이함은 그동안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인물인 중도 우파 성향의 안재홍을 자신의 무대 위에 올렸다는 것이다. 우파 선도의 좌우합작에 노력했고 이상주의에서 현실을 인정한, 자신과 같은 역사가를 선택한 일이다. 그와 가상 문답을 통해서 해방 정국을 살펴보려고 했다.


안재홍은 1965년에 사망했지만 6.25 전쟁 때 납북되었기에 해방일기 5년간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대장정이라고 비유하는 해방일기 10권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후대에 교과서적인 지침이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