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네 원수를 사랑하라!

두 아들 아빠 2011. 12. 6. 18:40

그게 온유한 자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런데 원수를 욕보이거나 죽이지는 못해도 정말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

낮은 단계에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되도록 내가 남에게 원수가 되지 말고, 가급적 원수를 삼지 말자! 좀 손해를 보더라도 더 이상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으면 철천지 원수 까지는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절대 피할 수 없는 원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게 바로 가족이요, 내 식구다.

우리 어른들은 이를 일직이 간파했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원수!"

 

2000년 전 노총각 예수는 "네 식구가 원수다." 라고 단언 했다.

그리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성경은 인류 첫 살인을 가인과 아벨의 형제간의 살인으로 말하고 있다.

원수와 관계성의 종말은 살인이다.

 

인간관계(시스템) 속에 원수를 사랑까지 할 온유한 자가 될 수 있는 수양처가 가족이다.

자녀가 속을 썩이고 개판을 치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돌아서면 그런 놈이 불상해 지고 안타까운 게 부모 마음이요 인지상정이다. "너 어떻게 되려고 하니!" 원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결국 그 원수를 위해 헌신과 희생까지 한다.

 

자식만 그런가? 어처구니없는 부모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식들이 이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던 부모가 늙어서 힘 빠진 것을 보면서 자식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그도 아니면 자신도 부모가 되어 원수 같았던 부모가 조금은 이해되기도 하리라.

 

도저히 그럴 수 없을 때는 더 강력한 사랑을 자기 자식에 쏟아내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승화된 은혜로운 일이다. 부모로 받은 억압과 방관을 여과 없이, 어떤 경우는 더 증폭시켜 자기 부모에 대한 분노를 자녀에 복수하듯이 쏟아 붓는 경우도 있다.

 

부모와 자녀만 원수일까? 부부도 원수지간이 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해어졌다.’는 코메디 같은 관계도 있지만 결국 죽일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해어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이혼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정욕을 채우지 못해서라고 한다.

 

가족은 인간관계의 뿌리이며 열매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태어나고 최초 인간의 관계성과 사랑과 애증을 배우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죽음도 가족이 지켜보는 대서 치러진다. 가족의 죽음을 일직 경험한 사람은 남다른 점이 여럿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수용’(受容)이다. 받아들이고 담아낼 그릇이 크다.

 

현대 사회 풍조와 같이 가족이 해체 내지는 애초에 가족 자체를 꾸리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이 세상에 진정으로 온유한 사람이 존재치 않을 수도 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원수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니 아주 쿨 한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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