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일회담 반대에서 한일군사 협정까지 냅다 달리기

두 아들 아빠 2012. 6. 30. 10:38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한일회담 반대'가 아니라 외교관계를 빌미로 굴욕적인 '배상금 야합'이었다. 야합의 중심은 박정희이었고 하수인은 김종필이었다. 이를 반대한 젊은 그룹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이른바 6.3 세대라 불리우는 40년대 생들이었다. 이들이 이제 한일군사협정을 맺고자 한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반란에 의해 배설됬지만 친일, 매판 수구세력들의 은밀한 지지가 있었다. 4.19는 일제에 이어서 해방 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호의호식 하던 친일 매판세력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김구선생의 죽음을 규명하자는 움직임과 민주화 뿐 아니라 해방 후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처벌 하자는 목소리도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을 막으려고 허겁지겁 내세운 것이 박정희라는 주장도 있다.

 

이승만 정권은 일본에 대해서 아주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친일세력을 권력의 핵심과 전면에 내세웠으면서도 국민 정서를 이용했는지 일본과의 외교관계는 아주 냉랭하게 유지했다. 이는 일인 독재자인 이숭만이 일본은 모르고 철저히 미국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정 반대 였다. 미국보다는 일본이 훨씬 가까웠다. 이런 박정희의 등장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급속하게 진전되었다.

 

외교관계 정상화에 이어서 한일 의원친목회가 "연맹"이라는 이름으로 결속되었다. 일본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나경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그 회원들이다. 박정희에 이어서 이명박 역시 아주, 상당히 일본과 우호적이다. 특히 형님 이상득은 한일의원연맹 회의에서 유창한 일본어로 인사말을 할 정도다. 이들이 한일군사협정을 맺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에  이어서 일본이 자기들 목숨을 담보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회담반대' 늙어서는 '군사협정' 이쯤 되면 중증의 정신병자 세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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